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운 Aug 17. 2023

죽음의 순간

조금 적나라한 나의 기억

 죽음이 생각보다 아름다운 모습이 아님을 고백한다. 모든 것은 의사의 사망선고를 끝으로 시작된다.


 시체에서 뿜어 나오는 냄새는 역겹다 못해 소름 돋는다. 시취와 나를 가로지르는 유일한 경계는 얇은 고무장갑 한 겹이다. 한 꺼풀 사이 밀접하나 촉감을 느껴본 사람들은 고무찰흙 같은 살덩이에 잠을 못 이룬 경험이 있을 것이다. 상온에 방치된 오래된 고깃덩어리를 만지는 느낌. 조금이라도 뒤적여보면 금방이라도 구더기를 발견할 것만 같은 느낌.


 PICC(말초삽입형 중심정맥관 : 흔히 병원 생활을 오래 해서 혈관주사를 놓기 어려운 사람들이 한다) 제거하고 나오는 물 같은 피는 구역감이 든다. 재빨리 거즈로 틀어막는다. 하얀 거즈에 살며시 스미는 액체를 반창고로 단단히 고정한다.


 서슴없이 제거한 L-tube(비위관 : 코에서부터 위로 연결되는 관으로 여기를 통해 약을 주거나 액체로 된 식사를 제공한다) 음식물이 엉겨 붙은 형태의 끔찍한 것들이 묻어 나온다. 그 끝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냄새는 불과 몇 시간 전에 온전한 것이었을 텐데 마치 썩은 고기를 발견한 것처럼 숨을 참고 봉지 속에 집어던지듯 넣어버린다.


소변줄에서는 그나마 익숙한 액체가 방울방울 맺힌다. 오히려 원래부터 접촉에 주의가 필요하던 것들은 상대하기 편한 느낌이 든다. 오랫동안 사용한 산소줄에는 이미 체액과 콧물이 뒤엉킨 덩어리들이 묻어있다. 


 만약 죽은 이에게 욕창이 있다면 끔찍한 악취가 동시에 난다. 대변 냄새와 썩은 살냄새가 한데 뒤섞여 코를 비튼다. 차라리 살아있었으면 혹은 죽기 직전에 모습이 그나마 좋은 것이 같은 욕창을 보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보고 만졌다면 죽은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이 세상 것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만지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느낌이 소름 끼칠 정도로 싫다. 금방이라도 다시 일어나 내 손목을 휙 채며 생전에 그랬듯 '끼와악!' 하며 소리 칠 것만 같다.


 한시라도 빨리 해치우고 싶은데 옆에 있는 보호자는 아직도 제 감정에 빠져 슬퍼 흐느끼며 내 옆에서 나의 행위를 지켜본다. 부담스럽다. 그 공간에 죽은 이가 내뿜는 숨결이 너무 불길해서 나는 괜스레 창문을 연다. 몸에 베인 냄새가 참기 힘든 이유도 있다. 


 그렇게 다 치우면 심전도 모니터와 각종 장비들을 끌며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온다. 처치실에 들어가 사용했던 기구들을 소독한다. 생전에는 급하면 맨 손으로 곧잘 만졌던 사람이었을 텐데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행여 알지 못하는 불길한 무엇을 접촉할까 장갑을 끼고 소독티슈로 윤기가 날 때까지 닦는다.


 정리가 끝나면 기록을 시작한다. 우습게도 끔찍한 현장에서의 모습은 '사후처치 시행함'이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그리고 고인에 대한 나의 모든 생각과 태도는 생략한 채 서류에 쓰이기 알맞은 문장들을 적는다.


 문득 어릴 적 집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이전 01화 병원의 온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