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떠나던 날

끝내 다 전하지 못한 마지막 인사

by The 늦기 전에

할머니는 2020년 1월 12일 세상을 떠났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날이 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딱 10년을 준비했던 그 날이 하루아침에 찾아왔다.


2020년 1월 11일


결혼을 한 달 앞둔 시점이었다. 여기저기 청첩장을 돌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마음 한 편으로는 '신혼여행을 갔을 때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설마 하는 마음이 더 컸다. ‘10년을 요양병원에서 건강히 계셨는데 설마 그 일주일을 못 넘기실까’ 하는 기대가 컸던 것 같다. 확률적으로도 그건 말이 안 될 거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차라리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결혼식을 해야 하나'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게 되면 할머니가 돌아가시기를 기다리는 것 같아서 내키지 않았다. 그저 신혼여행을 다녀올 때까지 무사히 계셔 주기만을 간절히 기도하고 바랄 뿐이었다. 할머니를 결혼식에 초대할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 가슴 아팠다.


그 날은 아침 일찍 할머니를 뵈러 갔다. 저녁에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이전보다 많이 쇠약해지셨지만, 지난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짧게 인사만 나눈 채 돌아왔다.


그리고 청첩장을 전달하기 위해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온 동네 친구들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오랜만에 술도 많이 마셨다. 친구 한 명은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참석하지 못했다며, 미안하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친구에게 "괜찮다, 오히려 내가 가봐야 하는데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장례식장에 가지 못해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다음 날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 채.



2020년 1월 12일


어제 마신 술로 인해 숙취와 싸우고 있는 평범한 일요일 아침이었다. 술은 어느 정도 깼지만 두통이 심했고, 도무지 잠이 깨지 않아 비몽사몽 했다. 그때,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할머니 상태가 좋지 않으니 와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전화를 받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술을 마셨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술기운도 사라졌다.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할머니 자리에 칸막이가 쳐져 있었다. 자리에 칸막이가 세워져 있는 경우는 보통 둘 중 하나다. 옷을 갈아입히거나, 임종이 가까워졌거나. 할머니는 후자였다. 오늘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고모와 사촌누나, 어머니까지 한 자리에 모였다.


사람에게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감각이 청각이라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힘겹게 마지막 숨을 내쉬고 있는 할머니 귀에 대고 뒤늦은 용서를 빌었다. "할매 죄송해요, 사랑해요, 가지 마세요..." 병원이 떠나가라 울부짖었다.


할머니의 숨은 점차 옅어져 갔다.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 이윽고 할머니 옆에서 심박수를 보여주던 기계에 바이탈 사인이 일직선이 되었다. 그렇게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하라


할머니가 치매에 걸렸을 당시에는 치매에 걸리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할머니께 죄송하다고 용서를 빌고 싶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먹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을 다 사드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딱, '치매에 걸리기 하루 전'으로만 돌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점점 쇠약해지고 대화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나니, 치매에 걸렸어도 대화는 할 수 있었던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적어도 그때는 할머니의 의사를 물어볼 수 있었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할 수도 있었으니까. 제발 '대화만이라도 가능하던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막상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 아무 말없이 누워계셨어도 할머니가 살아계시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지만, '숨은 쉬고 있던 그때로'. 아무 대답 안 하셔도 되니까 그저 사랑한다고, 감사했다고, 잘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딱 한 번만, 더 이야기하고 싶다.


지금 이 순간도 곧 지나가버릴 것이고, 나중에는 이 순간 역시 과거가 되어, 돌아오고 싶은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 언젠가 찾아올 죽음이 항상 가까이에 있음을 기억하고, 현재에 최선을 다해야 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더 늦기 전에 사랑하는 이에게 꼭 사랑한다는 말을 전했으면 좋겠다.


끝으로 1940년에 태어나 2020년 세상을 떠난 '백옥자'라는 할머니가 이 세상을 잘 살다 가셨음을, 결코 허망한 인생이 아니었음을, 또 많은 가르침을 주고 떠났음을 많은 이가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그곳에서는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셨으면...


백옥자(白玉子, 1940년 11월 22일 - 2020년 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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