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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늦기 전에 Feb 04. 2022

어떠한 시련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힘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니체를 자주 인용하지는 않으나, 이 말만큼은 밑줄을 그어가며 읊고 싶다. 

지금 내가 당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너를 죽일 수 없는 것이 결국 너를 강하게 할 것이다."

- 위지안 저,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예담, 2011- 


  내 인생에 꽤나 큰 영향을 미쳤던 책 중 하나인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의 프롤로그 마지막 구절이다. 사실 이 말을 책에서보다 먼저 알게 된 것은 군대 훈련소 시절이었다. 당시 우리 소대는 악명 높은 화생방 훈련을 앞두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때 내 옆자리에 있던 훈련소 동기는 내무반 앞에 있는 작은 칠판에 이렇게 적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모든 것은 나를 강하게 할 뿐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짧은 문구였지만, 그 문장이 주는 임팩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곧바로 항상 소지하고 다니던 훈련용 수첩에 글귀를 받아 적었다. 이후 진행된 훈련에서 우리는 함께 손을 맞잡고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그런데 재밌었던 건 이 문구를 우리에게 알려주었던 동기 녀석은 화생방 훈련 중 방독면을 벗자마자 콜록거리며 손을 놓고 도망가버렸다.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다. 



  이후 2년 여의 시간이 흘러 기다리고 기다리던 전역날이 찾아왔다. 전역 당시에는 모든 일에 의욕이 넘쳤다. 뭐든 다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오랜만에 마주한 군대 밖 세상에는 더 큰 시련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군대에서는 몸이 조금 힘들 뿐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되는 일들이었다. 한 마디로 '끝이 있는 고통'이었다. 하지만 현실세계의 가난이라는 벽은 시간이 갈수록 높아만 졌다. 주어진 환경에 따라 할 수 없는 일은 늘어만 갔고, 그에 따라 좌절감도 커져갔다. 과거에는 친구들끼리 술을 한 잔 살 수 있냐, 없냐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면 어느 순간에는 집을 살 수는 있는지, 물려받을 재산은 있는지, 결혼은 할 수 있는지까지 격차가 벌어졌다. 열등감은 커져갔고, 좌절하는 날이 많아졌다. 여자 친구가 있었지만 결혼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때마다 세상을 탓하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탓했다. 왜 이렇게 가난하게 태어난 건지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다른 이의 성과를 깎아내리기 바빴고, 그런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자괴감을 느꼈다. 미래는 없어 보였고,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인생에 물음표만이 가득했다. 이번 생에는 출세는 물론, 결혼도 힘들 것 같았다. '왜 살아야 하는 거지?'


  이런 생각은 할머니가 요양병원 중환자실로 이동하며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항상 죽음이라는 존재가 상주해 있는 듯한 공간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임종을 앞둔 이들이 있는 호스피스 병동보다 더 죽음에 가까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세상 어느 곳보다 조용했고, 그 고요한 침묵 속에 있노라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중환자실에는 환자가 의사전달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고, 눈만 뜨고 있거나 심지어 눈을 뜨는 것도 힘들어하는 환자도 있었다. 그래서 가끔 찾아오는 보호자들도 짧게 인사만 나누고 돌아가곤 했다. 그 마음이 이해가 되었던 것이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환자를 바라보는 일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공간이었지만 내 경우에는 한 번 가면 삼십 분에서 한 시간 정도 할머니 곁을 지키고는 했다. 병원까지 왕복 한 시간이 넘는 거리여서 시간이 아까워서 그랬던 것인지, 외롭게 누워있는 할머니가 안쓰러워 그랬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가끔은 눈감고 있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주변의 다른 할머니들을 보며 '다들 젊을 때가 있으셨을 텐데 어쩌다...' 하는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매주 주말 죽음을 체감하고 나면 현실 속 시련이 하찮게 보였다. 그리고는 '어차피 죽는 거라면 못할 것이 있을까?', '이렇게 나이 들게 될 거라면 할 수 있는 거 다 해보고 죽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다시금 삶의 의지가 샘솟았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쓸쓸한 내 마지막 모습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이후 내 인생은 죽음과 동행하게 되었다. 신조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통해 살아가는 이유와 관계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는 내 인생의 비전이자 목표가 생겼다. 지금까지도 온통 죽음과 관련된 책을 읽고, 이것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한다. 

 

  생각해보니 니체의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강하게 할 뿐이다'라는 말에는 숨겨진 의미가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인생에는 끊임없이 시련들이 찾아왔고, 그 시련들은 날 죽이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련 그 자체가 스스로를 강하게 만들어주지도 않았다. 아마도 니체가 진짜 전하고자 했던 것은 '자신의 죽음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은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다'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어차피 한 번 죽을 건데 뭐 죽고 사는 걸 그렇게 겁내랴
- 현대불교, 2020.07.21 기사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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