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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늦기 전에 Feb 11. 2022

오늘 내가 살아갈 '단 하나'의 이유

오직 하나면 된다.

  오랜만에 빅터 플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다시 꺼내어 보았다. 몇 번이고 읽었던 책이기에 술술 읽혔다. 그러던 중 문장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


  처음 이 문구를 접했을 때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는 못했다. 단순히 '삶에는 멋진 목표나 계획이 있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어떤 상황에도 견딜 수 있는 그 '살아갈 이유'라는 것은 거창할 이유도, 멋질 필요도 없었다. 


  군 입대를 3개월 앞둔 시점에 내 할머니는 치매에 걸렸다. 때문에 입대 전날까지 군입대를 연기할지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이미 한 번 입대를 연기한 상황이었고, 스물셋이라는 나이도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셔둔 채 군대에 갔다. 


  훈련소는 참 신기한 곳이었다. 온갖 마음의 짐을 짊어지고 입대를 했음에도 몸이 힘들어서 바깥세상의 고통을 잠시 잊을 수가 있었다. 간혹 할머니 생각이 떠올라 힘들기도 했지만, 이외의 시간에는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힘들었던 5주 간의 기초 군사훈련이 끝나고, 2년 가까이 생활하게 될 자대에 배치됐다. 신병 면담 시간이 되어 간부 앞에 앉아 내 이야기를 하는 순간, 그동안 육체의 고통에 억눌려있던 응어리가 터져 나왔다. 


"저 나가야 됩니다. 할머니께 마음의 짐이 있습니다. 저 때문에 할머니가 치매에 걸렸습니다. 만약에 여기 있다가 할머니 임종 못 지키면 그 죄책감을 견뎌낼 자신이 없습니다."


  처음 보는 행정보급관 앞에서, 선임들이지만 나이로는 동생들인 병사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때의 감정은 탈영이라도 하고 싶었고, 그 죄책감의 무게는 죽을 만큼 괴로웠다. 


  며칠 뒤 일과를 마치고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너무 고맙게도 내가 훈련소에 있는 동안 할머니 병원에 다녀왔다고 했다. 그리고는 "싸이월드에 할머니 사진 올려놨으니까 보고 울지 마리"라고 당부했다. 곧바로 부대 내에 컴퓨터를 할 수 있는 곳으로 향했다.


  친구가 저장해준 사진 속 할머니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처음 요양병원에 들어갈 당시와는 달리 어느 정도 적응을 하신 것처럼 보였다.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과거의 고통스러운 눈물과는 결이 달랐다. 안도의 눈물이자 기쁨의 눈물이었다. 


  그때부터 내 군생활은 180도 달라졌다. 할머니를 사진으로 접한 것뿐이지만 그로 인해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반드시 군생활을 잘 마치고 돌아가, 할머니를 돌봐야 했다. 혹여나 할머니가 돌아가시더라도 임종을 지키고 마무리를 할 사람 역시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10년 간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는 것'이 되었다. 그 이유가 생긴 뒤로는 아무리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어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힘든 상황에서도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다. 어떻게든 할머니 임종까지 살아야만 했기 때문에.


  보건복지부에서 발간한 <2021 자살예방 백서>에는 2019년 우리나라의 한 해 자살자 수가 1만 3,799명이라고 한다. 이는 10만 명당 26.9명으로 OECD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여기에 집계된 자살시도자 수는 3만 명이 넘는다. 슬픈 일이다.


  감히 짐작해보건대 누군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유는 '단 하나'의 살아갈 이유를 아직 찾지 못했거나, 혹은 그것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니체에 말처럼 누구든 '왜'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된 순간부터는 '어떤' 시련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이때의 '왜'는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된다. 작더라도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소중한 무언가라면 충분히 살아갈 이유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그 소중한 무언가는 가까이 있어서 소중하다고 인식하지 못하는 '가족'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늦기 전에 그 '살아야 할 이유'를, 어떤 시련도 견디게 해 줄 단 하나의 이유를 하루빨리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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