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e 늦기 전에 Jun 30. 2021

죽음을 파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유난히 죽음에 집착하는 30대가 내린 결론

  오랜만에 함께 낚시를 갔던 20년 지기 친한 친구와의 뒤풀이 술자리에서 이야기했다. 


  "죽음을 팔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곧바로 답답하다는 표정과 함께 '그런 걸 누가 사는데?'라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술김에 한 이야기가 아니다. 당시 나는 운전을 해야 했기에 술을 한잔도 마시지 않았다. 시간대도 모처럼 낚시 나들이를 나온 것이었기에 백주대낮이었다. 


  사실 친구들뿐 아니라, 와이프에게도 이 이야기를 꺼낼 때면 언제나 혼이 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물론 지속적으로 얘기했더니 이제는 거의 반 포기하고 뭐든지 한 번 해보라고는 한다.) 그럴 때마다 거창하게 내가 '왜 죽음에 집착을 하게 되었는지', '왜 죽음이라는 재수 없는 개념을 팔려고 하는지' 신나게 설명을 해본다. 하지만 설명이 부족했는지, 화술이 부족했는지 여전히 납득을 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처음에는 흙수저의 성공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린 시절, 동년배 중에서는 가난한 생활이라면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힘든 유년, 학창 시절을 보냈다. 만약 내가 살던 당시의 모습이 유니세프 모금방송에 나왔다면 꽤 많은 기부를 받았으리라 장담한다. 


  그렇게 성인이 되었고, 자기 계발서 읽기라는 취미가 생겼다. 나 같은 흙수저도 출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다. 하지만 자기 계발서는 1%를 숨기고 있었다. 바로 저자가 가진 능력이나, 자산이다. 하나같이 저자만이 가진 특별함을 감춘 채, 자신의 성과와 성과를 만들어 낸 방법을 설명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물론 전부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래서 진짜 흙수저가 성공하는 모습을 통해 힘든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희망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블로그, 브런치, 강연, 전자책, 공동저서 프로젝트 등 당장 배울 수 있는, 당장 시도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여러 프로그램들을 찾아다니며 글을 쓰고, 강연을 배우고, 공동저서를 내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였다. 그래서 모든 활동을 멈추고 "왜?"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본질적으로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그 고민 끝에는 언제나 '죽음'이 있었다. 이상하게도 내 인생의 전환기에는 언제나 죽음이 함께 했다. 고등학교 졸업식날 친구의 죽음으로 장례식장에 가야 했고, 20살 마지막 날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군대에서 내 사수는 대장암으로 조기 전역 후 얼마 못가 명을 달리 했고, 할머니가 계신 요양병원을 10년 간 들락날락하며 수많은 죽음과 마주해야 했다. 또한 결혼을 한 달 앞둔 어느 날 나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때마다 드는 생각은 인생이 너무 짧다는 것이었다. 언제나 마음속에서는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그래서 그런지 건강 염려증도 갖게 되고, 읽게 되는 책들도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와 같이 죽음과 관련된 것이었다.


  아마도 그런 경험들과 지식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들어낸 것 같았다. 인생이 유한하기에 지금 도전하고 있는 것이고, 다른 이들에게도 그 깨달음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제야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찾았다. 나만이 할 수 있고,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어린 시절에는 수없이 죽고 싶었다. 엄마가 없는 한 부모 가정이었기에, 찢어지게 가난했기에, 미래가 보이지 않았기에. 용기가 없어 죽지는 못했지만, 삶의 이유도 목표도 없었다. 20대에는 늘 죽음의 근처에서 살았다. 주변에 많은 죽음을 접했고, 주말이면 생기가 없는 요양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때의 깨달음들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나름대로 사명감도 생겼다. 난 천만 원 버는 법도 모르고, 누군가를 부자로 만들어 줄 능력도 없다. 허나 단 한 가지, 누구나 죽음 앞에서 후회 없이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싶다는 꿈이 있다. 


  아직 어떻게 죽음을 팔 수 있을지는 명확히 그려지진 않지만, 내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스스로 명을 달리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지난 날에 대한 후회로 통탄하며 마지막을 맞이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꿈꿔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