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e 늦기 전에 Feb 12. 2022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질까?

그럼에도 살아야 하는 이유

  요즘 사람들은 잘 죽지 않는다. 의학 기술이 발달하며 평균 수명은 80세에 육박하고, 웬만한 병은 쉽게 치료가 가능하다. 심지어 공포의 대상인 무시무시한 '암'조차 초기에 발견하여 수술을 하면 얼마든지 회복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자살률만은 예외다. 의학의 발과 관계없이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아니 더 늘어만 간다. 통계에 따르면 2019년 대한민국의 고의적 자해(자살)자 수는 10만 명당 26.9명으로 전체 사망원인에서 암, 심장질환, 폐렴, 뇌혈관 질환에 이어 다섯 번째로 많은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어떤 질병도 조기에 발견만 하면 고칠 수 있고, 굶어 죽지 않는(적어도 한국에서는) 세상에서 왜 이리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가 많은 것일까? 이 살기 좋은 세상에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 걸까?


  몇 주전, 군생활을 같이 했던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최근 이별을 겪었고, 그 후유증이 크다고 했다. 전화로 장시간 대화를 나누며 그의 고충을 들어주었다. 많이 힘든 상황에 처해있었다. 혹 좋지 않은 선택을 하지는 않을지 우려스러워 신신당부를 했다.


[나] "ㅇㅇ아, 절대 나쁜 생각하지 말고, 일단 니가 잘 사는 게 제일 큰 복수다."

[동생] "진짜 죽을까도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외롭게 갈까 봐 죽지도 못하겠더라고요."


   다시 한번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라며 당부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끊고 나니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2020년에 자살률이 낮아졌을 것으로 추정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혹 동생의 경우처럼 자살을 유보하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은 아닐까? 갑자기 최근 읽었던 책의 구절이 생각났다.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충동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중략) 그래서 굉장히 오랫동안 죽음을 준비하게 되고 어느 순간 용기를 내서 실행하게 된다. 물론 그것이 긍정적인 용기는 아니지만 자살은 엄청난 용기의 결과다. 순간적인 판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 유성호 저,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중에서 -


  불현듯 걱정이 되었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죽지 않더라도 죽음을 고려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니 아찔한 생각이 다.  


  아마도 자살을 시도하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 생각했을 때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현재보다 나아지지 않거나,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더 나아질 가능성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을 테니까.


  고등학교 시절 우리 집의 경제상황이 딱 그랬다. 정말 최악이었다. 아버지는 사고로 장애등급을 받았고, 동사무소에서 나오는 기초생활수급비로  겨우 생활을 했다. 살고 있던 반지하 집은 비가 조금만 와도 입구가 잠겨버리기 일쑤였다. 화장실이라고는 밖에 있는 공용화장실이 전부였고, 냉난방은 꿈도 꾸지 못했다. 도무지 그 낡은 집을 벗어날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월세는 밀리고, 빚은 늘어갔다. 그러던 중 아버지는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후 일상으로 돌아와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의문의 전화 한 통을 받게 되었다.


[주민센터] "안녕하세요. ㅇㅇ동 주민센터 인데, ㅇㅇ씨(아버지) 핸드폰 맞나요?"

[나] "아, 저희 아버지 되시는대요. 무슨 일이시죠?"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내가 모르는 빚이 있는 건가?', '수습을 못한 게 있었나?' 등의 불안감에 목소리는 떨렸다.


[주민센터] "다른 게 아니라요~ 아버지께서 예전에 신청해주셨던 기초수급자 영구임대아파트 당첨되셔서 연락드렸어요. 바로 입주 가능한데 진행하면 될까요?"

[나] "아... 아니요. 저희 아버지 지난달에 돌아가셨어요."


  울컥했다. '한 달만 더 살았어도 그 어두운 골방에서 최후를 맞이하지는 않았을 텐데...', '딱 한 달만 더 살았더라 번듯한 아파트에서 살면서 조금은 사람답게 살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에 울분이 멈추질 않았다. 물론 지병으로 돌아가신 것이지만, 만약 삶 속에 '희망'이라는 게 있었다면 술을 조금 덜 마시지는 않았을까, 건강을 조금은 챙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들었다. 결과적으로 살아만 있었다면 조금 더 좋은 환경을 누릴 수 있었을 텐데. 살아만 있었더라면...


  나이 먹을수록 사람들이 왜 스스로 목숨을 끊는지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세상살이 참 빡빡하다. 나 빼고 다 행복해 보이고, 다들 잘 사는 것처럼 보인다. 열심히 노력해보지만, 나만 이렇게 아등바등 산다고 뭐가 달라지나 회의감만 몰려온다.


  그래도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아무리 열악한 환경만 보여주는 나쁜 세상일지라도 그다음에 어떤 장면을 보여줄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당장 다음 주에 로또 1등에 당첨될 운명일 수도 있고, 내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운명일지도 모른다.


  미래가 백 퍼센트 좋아질 수 있다고 장담은 못하지만, 적어도 좋아질 가능성이 제로(0)는 아니라는 것이다. 소프트뱅크 회장 손정의는 간염으로 5년이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고도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고, 결국 의학기술의 발달로 현재까지도 생존해 승승장구하고 있다. 살다 보면 언젠가는 해 뜰 날이 있을 것이다. 일단은 살고 보자.


세상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기야!
- 영화 <황산벌> 中 -


이전 13화 나는 100일에 한 번씩 "꽃"을 선물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