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100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요?
3개월에 10여 일을 더한 기간. 달력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기간이지만 처한 상황에 따라, 그리고 맞이하는 사람에 따라 이토록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기간이 또 있을까 싶다. 예전에는 아기가 태어난 지 100일이 지나면 잔치를 열었다. 또 커플들은 만난 지 100일이 지났음을 기념하고 서로 축하의 선물을 건네기도 한다.
또 시험이나 해야 할 중요한 일을 앞둔 사람에게 100일은 쏜살같이 지나갈 것만 같은 찰나의 시간이다. 특히 수능 100일 앞둔 수험생들은 너도나도 새롭게 카운트다운을 시작한다. 이와 반대로 금연, 다이어트와 같이 매일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고 있는 이에게 100일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만 같은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진다. 특히 군대에서 제대까지 100일 남았을 때의 그 막막함은... 하......
아무튼 난 그런 100일을 기념한다. 정확히는 100일에 한 번씩 아내에게 꽃을 선물한다. 만난 지 첫 번째 100일에는 한 송이를, 다음번에는 두 송이를... 2000일을 넘어서부터는 매번 꽃 한 다발을 선물하고 있다. 누군가는 무슨 그런 쓸데없는 기념일을 챙기느냐고 타박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보기에는 '쓸데없어' 보이는 기념일을 챙기는 이유를 적어볼까 한다.
늘 '다음에'만 보고 사는 놈
영화 <아저씨>에는 주옥같은 대사가 많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이것이다.
"니들은 내일만 보고 살지? 내일만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에게 죽는다."
물론 해당 장면에서 이 대사는 '지금 이 순간을 사는데 최선을 다하라'와 같은 교훈적인 메시지보다는 '넌 내 손으로 죽인다'라는 무시무시한 의미를 담고 있는 대사였지만, 내게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왜냐면 난 지금껏 '내일'도 아니고 "다음에"만 보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강제로 주어진 일이나 학업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계획적이고 빠르게 처리하는 성격이었지만, 늘 '관계'에 있어서만큼은 차일피일 미루고는 했다. 누군가와 약속을 잡을 땐 언제나 '다음에 보자', '다음에 밥 한 번 먹자'를 남발했고, 대충 넘어가기 일쑤였다. 가족 여행이나 커플 여행도 한 번 가자고 생각만 하다가 시기를 놓쳐서 가지 못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아버지께 약속했던 '다음에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라는 약속은 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시며 지키지 못했다. 할머니께 약속했던 '다음에 제주도 한 번 가요'라는 약속은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며 지킬 수가 없었다. 또 지금의 아내와 연애 시절 '다음에 보라카이 한 번 가자'라는 약속은 환경문제로 갑자기 보라카이가 폐쇄되는 바람에 원래 가려고 했던 때보다 몇 년이나 지난 후에야 지킬 수 있었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서서히 느끼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특히나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매주 할머니 병문안을 가게 되면서 더욱 '다음에' 살면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
할머니가 처음 요양병원에 입원했을 때, 할머니께 '다음에' 할머니 고향에 한 번 가자고 약속했다. 물론 기대 섞인 혼자만의 바람이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상태가 조금만 호전되면 갈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곧 할머니는 거동이 힘들 정도로 몸이 약해지셨다.
거동이 힘들어지셨을 무렵에는 할머니께 고기나 생선과 같이 좋아하시던 음식을 싸 온다는 약속을 하곤 했다. 그러나 음식에 소질이 없던 나는 늘 '다음'을 기약하며 포장이 편한 죽만 사갔다. 어느 순간 더 늦기 전에 진짜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음식을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미 음식을 삼키지 못할 정도로 소화기능이 망가진 후였다.
그리고 할머니가 입원했던 순간부터 병문안을 다니는 내내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할머니 앞에만 앉으면 입이 얼어붙어서 늘 '다음'으로 미루었다. 결국 사랑한다는 그 흔한 말은 할머니 임종의 순간에 의식도 없는 할머니의 귀에 외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요양병원은 '다음'이란 없는 공간이었다. 무언가를 하기에,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지금'이 하기 가장 좋은 때였고, 최고의 적기였다. 그때를 놓치고 나면 기회조차 없는 말 그대로 '끝'이었다. 이후 더 이상은 미루지 않겠다고, 지금을 살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과거 큰 인기를 끌었던 <거침없이 하이킥>이라는 시트콤 91회를 보면 지금을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떠올리게 하는 대사가 나온다. 봄바람 난 나문희 여사에게 이순재 할아버지는 타박을 한다.
이순재 : 다 늙게 그게 무슨 주책이야 그게!
나문희 : 그래. 다 늙어서 그랬어 다 늙어서!! 다 늙어서 이제 앞으로 놀 날이 얼마 없을 것 같아서 사지 멀쩡할 때 놀라 그랬어 왜!! 내 인생에 봄이 몇 번이나 올 것 같아? 몇 번이나 올지 당신 알아? 난 몰라!! 당신이나, 나나 언제 어떻게 될지 아냐고!! 봄바람날 날이 얼마 없을 것 같아서 원 없이 한 번 실컷 놀아 보고 그랬어 왜 그래 왜!!
(중략)
이순재 : (내레이션)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눈부심이 오래가지 못하기 때문이오. 그건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라. 그래 실컷 구경하고 즐기시게나. 이 찬란한 봄날이 다 가기 전에.
아내에게 100일마다 꽃을 선물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당장의 100일이 아무런 의미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언제까지 챙길 수 있을지 그 끝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년 동안 100일 기념일을 챙겨봐야 1년에 서너 번뿐인 소중한 날이고, 더욱이 그날은 지나고 나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꽃이 비싸거나 클 필요도 없다. 그저 작은 생화 한 다발이면 된다. 향기를 가득 머금은 꽃은 그렇게 주는 기쁨, 받는 기쁨을 선물하고 다음 기념일을 기약하며 조용히 시들어 간다. 1년에 몇만 원 투자로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살 수 있는 이만큼 가성비 좋은 선물이 또 있을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해도, 편지를 쓰지 않아도 괜찮다. 예쁜 꽃 한 다발은 그것을 대신해주고도 남는다. 나부터 꽃을 선물할 때마다 하는 말은 "오다 줏었다"(오다가 주웠다의 경상도 방언)가 전부이다. 그래도 또 무슨 날이냐고 좋아하며 연신 사진을 찍어대는 아내의 모습을 볼 때면 행복감이 샘솟는다. 상대와 관계를 개선하고 싶을 땐 조용히 꽃 한 다발을 선물해보자.
그렇게 우리 집 식탁에는 100일에 한 번씩 꽃 한 다발이 아름답게 수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