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고교시절,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처음 장례식장을 찾은지도 벌써 1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꽤 많은 이의 장례식에 참석했고, 그중에는 내 아버지와 할머니의 장례식도 포함되어있었다.
세상은 참 많이 변했지만, 장례식장의 풍경만큼은 변화가 거의 없다.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것 외에는 10여 년 전, 내 아버지 장례식과도 큰 차이가 없었다. 하긴 복장에서부터, 각종 절차까지 다 정해져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낸다는 것은 언제나 슬픈 일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장례식 내내 슬픔에 잠겨 있을 수도, 금방 털어내고 밝게 조문객을 맞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장례식에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몇몇 순간이 있다.
그 순간들은 지나고 보면 너무 소중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눈물을 쏟느라 기억도 나지 않는 찰나가 되어 버리기도 했다. 그래서 훗날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순간이 왔을 때 눈물에 방해받지 않도록, 부디 잘 이별할 수 있도록 '눈물 예방접종'을 하는 법을 공유하고자 한다.
첫째, 처음 조문객이 온 순간.
일단 처음 장례식장에 도착하면 정신이 없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슬픔이 가시기도 전이지만 장례절차, 음식, 일정 등을 정리하다 보면 눈물은 쏙 들어가 버리고 만다. 영정사진을 준비하고, 여러 서류에 사인을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상주석에 앉아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 경우에도 그때까지는 모든 것이 실감이 나질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현실감각은 떨어졌다. 마치 꿈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영정사진 속 아버지가 당장이라도 내게 말을 걸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장례 첫날에는 조문을 잘 오지 않는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첫날에 조문을 와주는 분들도 있다. 그렇게 첫 조문객을 맞이하면 첫 번째 눈물이 흐른다. 그제야 비로소 장례식이 시작된 느낌이 들고, 모든 상황이 실감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른 조문객 역시 갑작스러운 부고를 받고 달려온 것이기에 함께 눈물을 흘려주기도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마침, 장례식장 근처에서 모임을 갖고 있던 중학교 선배가 처음으로 조문을 와주었다. 그때 그 자리에 주저앉아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생각해보면 부고를 듣고 한달음에 달려와준 고마운 사람이었는데, 당시 제정신이 아니라 제대로 챙기지도 못했다. 슬픈 감정을 누르고 감사함을 더 전했어야 했다.
둘째, 입관식.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장례식도 금방 적응이 된다. 시간이 흐르면 감정적으로도 안정을 찾게 되고, 조문객들과 술을 한잔씩 나누기도 한다. 가끔 서글픈 생각에 눈물짓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지'하는 현실적인 생각도 함께 공존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입관식이라는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입관식은 말 그대로 망자를 관에 넣는 작업이다. 정말 중요한 과정이다. 입관식이 끝나고 나면 더 이상 망자의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렇기에 평생 기억하게 될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슬픔에 잠긴다. 누군가는 통곡을 하고, 누군가는 말없이 닭똥 같은 눈물만 떨군다. 뭐라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슬프다. 문제는 지나치게 슬픔에 매몰되어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입관 때가 그랬다. 지금도 그때 아버지 모습이 기억나질 않는다. 펑펑 울며 통곡했던 내 모습만이 기억에 남아있을 뿐이다. 그래서 10여 년 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입관식 전에 미리 그 순간을 상상하며 울어버렸다. 그리고 입관식 당시에는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가슴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 덕분에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지금까지 기억 한 편에 자리 잡고 있다.
어느 장례식장에 가더라도 입관식만큼은 슬픔이 가득하다. 물론 망자를 위해 애도하고 슬퍼해주는 것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슬픔에 잠겨있느라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 모습을 두 눈에, 기억속에 담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는 않았으면 한다.
셋째, 화장터에서.
2019년 기준, 국내 화장률은 88.4%에 달한다. 특히나 내 고향인 부산의 화장률은 94.8%나 된다. 부산에서는 거의 모든 장례식의 마무리가 화장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 장례식장에서 발인제를 하고 나면 화장터로 이동을 한다.
화장터에 도착하면 다 끝났다는 생각에 홀가분한 기분도 들고, '더 이상 흘릴 눈물도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화장터로 들어가는 관을 모니터로 보고 있노라면 또다시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이미 돌아가셨음에도 그 뜨거운 화장터에 들어가는 것이 못내 속상하다.
그리고 1시간 30분가량 걸리는 화장이 끝나고 유골함을 받게 될 때도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 한 줌 재가 될 거면서 왜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특히 유골함의 온기가 느껴질 때는 괜히 더 서글펐고, 삶에 대한 회의가 느껴졌다.
그때가 마지막 순간이었다. 내 아버지, 할머니와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 그렇게 납골당에 모시고 나니 더 이상 유골함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었다. 그때 조금만 덜 울고 그 마지막 순간에 명복을 비는데 집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이 모든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장례식이라고 해서 하루 종일 눈물을 흘린다거나, 실의에 빠져있지는 않는다. 또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감정은 다를 것이고, 느끼는 바도 제각각일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 깨달은 바에 따르면, 장례식에서 덜 슬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있을 때 잘하는 것'밖에 없다. 장례식장에서 흘린 눈물의 양은 그 사람에 대한 후회의 크기와 비례했다.
어쨌든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야 할 순간은 언젠가 반드시 찾아온다. 부디 그 순간이 왔을 때, 마음을 단단히 먹고 좋은 이별을 맞이하기를 바란다. 혹여나 처음으로 장례식이라는 슬픈 과정을 마주하게 될 누군가가 있다면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장례식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슬픈 순간이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다만 슬픔에 빠져 마지막으로 함께하는 그 소중한 순간을 놓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