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를 인터넷 서점으로 주문했고 배송까지는 일주일 이상 걸린 거 같다.
내가 어느 정도는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소년이 온다>부터 읽기로 했다.
생각해 보니 전 세계에서 사랑받았던 <파친코> 이후 읽은 첫 소설이다.
한강 작가는 대한민국의 역사적 비극인 5.18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썼을까?
<소년이 온다>늘 펼치고 첫 장만 두세 번 읽은 거 같다. 주인공을 '너'라고 부르는 게 어색했던 거 같다. 작가의 의도가 있을 거 같은데... 동호가 네가 될 수도 있었다는 걸까? 아니면 책을 읽는 누구라도 동호처럼 행동했을 거라는 것일까?
이 책에서는 동호, 정대, 은숙, 김진수와 나, 선주, 동호의 어머니 이렇게 7명의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동호와 동호 어머니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마지막 장인 동호 어머니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야 알았다. 이 이야기는 실화구나.
책을 덮고도 한참 동안 동호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1980년 5월의 항쟁 이후 동호 어머니는 어떤 삶을 살고 계셨을까?
유튜브를 검색해 보았다.
소설 속 동호(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영상이 바로 나왔다.
이 소설 속 주인공 '동호'는 광주 도청 시민군 막내였던 당시 16살 '문재학'이다.
영상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아들을 잃고 지금까지의 고통스러운 삶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가자! 집에 가자!"그러니까
"엄마, 창근이가 꼭 죽어가지고 들어온 것 같은디"
창근이라는 아이가 초등학교 동창이에요. 창근이를 어떻게 수습을 해놓고 집에 가도 가야지. 이렇게 놔두고는 못 가겠다고...
또 한편으로는 생각하면 그럽디다. 그래도 친구가 죽었다는데 수습을 해놓고 오겠다는데 어떻게 데리고 올 수가 있겠어...
그다음 날 도청으로 데리러 갔는데
학생들은 손 들고나가면 괜찮다고 한다고 해서...
책을 덮었지만 영상 속 주름진 동호 어머니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한순간에 주검으로 변해버린 아들을 그리워하며 한평생 사셨을 어머니.
아들을 잃은 삶은 하루하루가 늘 장례식이나 마찬가지셨다는 동호 어머니는 아들의 폭도 누명을 벗기 위한 '투사'가 됐다.
며칠째 동호 어머니의 모습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러다가 생각이 흘러 만약 나라면 그때의 나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라는 생각에 다가갔다.
내 아이가 그날 친구와 시위에 참여했고, 친구는 계엄군 총에 맞았는데 아직까지 시신도 찾지 못했다. 내 아이는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며 도청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돕겠다고 한다.
나는 너무나 걱정돼서 아이를 데리러 갔지만 아이는 친구 시신이라도 찾아보겠다고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손들고 항복하면 괜찮을 거라고 말한다.
나는 무거운 걸음으로 집으로 되돌아갔고, 불안감과 걱정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가 다음날 도청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내 아이는 싸늘한 시신이 되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내가 동호의 엄마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아마도 동호의 엄마와 같은 선택을 했을 거 같다.
아이의 생각을 존중하고, 선택을 기다려주는 것.
동호 어머니는 그날 도청에 가서 동호를 집에 데려오려고 했지만 동호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고, 기다려주었다.
집에 와서는 걱정과 불안감으로 뜬눈으로 밤을 새웠지만 동호를 강압적으로 데리고 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날 저녁 아들은 총에 맞아 죽어 싸늘한 시신이 돼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 의견을 존중? 아이를 기다려주는 것?
나는 이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아이가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것,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강압적인 태도를 보일 것이다.
"그저 겨울이 지나간 게 봄이 오드마는. 봄이 오면 늘 그랬드키 나는 다시 미치고, 여름이면 지쳐서 시름시름 앓다가 가을에 겨우 숨을 쉬었다니. 그러다 겨울에는 삭신이 얼었더니.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 다시 와도 땀이 안 나도록, 뼛속까지 심장까지 차가워졌다이."
-<소년이 온다> 중에서-
아마도 동호 어머니는 그날 억지로라도 동호를 데리고 오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자식들도 다 총 들고 고생하는데 자기 자식만 빼오는 게 마음에 걸리셨던 것이다.
또한 아들의 의사를 존중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친구의 마지막 시신을 수습하고 싶은 그 마음을 이해해주고 싶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선택으로 인해 아들을 지키지 못했다며 오랜 세월 후회하며 사셨을 그 시간들이 보여 참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어느 정도는 강압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엄마가 되기로 결심했다.
16살 아들을 가슴에 묻고 동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떤 세월을 보내셨을까?
한순간에 동생을 잃은 동호의 작은형과 큰형은 삶은 어떠했을까?
왜 동호네 가족은 이런 피해를 받아야 했을까?
왜 동호는 죽었어야 했을까?
작은 형이 갚겠다는 원수는 누구일까?
나라에서 죽인 원수가 맞는 것일까?
피해자 가족들의 아픔과 상처는 누구의 책임일까?
이것은 내가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해야 하나?
이건 지난 역사이며 앞으로 일어나지 않을 일이기 때문에 잊어도 되는 것일까?
도대체 왜 아무 원한도 없는 사람을 이렇게 잔인하게 죽일 수 있을까?
이들이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만큼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일까?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또 이유 없는 고문을 당한 사람의 삶은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내 손으로 너를 묻었은게. 하늘색 체육복에다 교련복 윗도리를 입고 있던 너를, 하얀 하복 샤쓰에가 아래위 까만 동복으로 갈아입혔은게. 혁대도 단정하게 매주고 꺄끗한 회색 양말을 신겼은게. 베니어 판으로 짠 관에다 너를 넣고 청소차에 싣고 갈 적에, 너를 지킬라고 내가 앞자리에 땄은게. 청소차가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네가 있는 뒤쪽만 뚫어져라 지켜보고 있었는게.
-<소년이 온다> 중에서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소설이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는 매체로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이번 수상으로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어나가고, 또 읽거나가게 될 것 같은데 이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5.18의 비극을 가슴속에 선명하게 기억했으면 한다.
또한 지금도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에게 죄송스러운 마음과 또 그분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이 존재하기 때문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나 역시 아이들과 이번 겨울방학때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다녀오려고 한다. 먼저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5.18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