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감, 혹은 자연과 신체의 오래된 동맹
제철이라는 말을 들으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시장, 손질된 봄나물, 무심한 듯 “지금이 딱 제철이에요”라고 말하는 상인의 말투. 하지만 제철이라는 건 정말 그냥 먹기 좋을 때를 말하는 걸까?
아니다. 사실은 꽤 정교한 과학이 거기 숨어 있다.
예를 들어, 봄에는 쑥, 냉이, 달래처럼 쓴맛이 강한 채소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 채소들엔 해독 작용을 돕는 폴리페놀과 피톤치드가 다량 들어 있다.
겨우내 움츠렸던 생명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점, 몸을 깨우는 데 도움이 되는 성분들이다.
영국 국립보건원(NHS)과 미국 National Library of Medicine은 봄나물의 항산화 효과와 간 해독 작용을 연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인간만을 위한 설계는 아니다. 계절에 따라 자라는 식물들은 각 시기의 환경 조건에 가장 적응한 생존 방식을 택한 결과일 뿐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오랜 진화의 시간 속에서 다듬어졌다.
봄에는 일조량이 늘고, 기온이 서서히 오르며 토양의 수분이 살아난다.
이런 조건은 식물의 생장을 촉진하고, 동시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쓴맛 성분, 예를 들어 항산화 물질이나 독소 억제 화합물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이건 그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전략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전략이 인간에게는 '건강에 좋은 음식'이 된다. 식물이 만든 쓴맛은 인간의 간 기능을 도와주고, 면역력을 강화시킨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이건 생명체 간의 간접적 공진 (co-evolution)의 결과이기도 하다.
즉 자연은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의 조건에 따라 가장 적절한 것을 낸다. 우리는 그 중 하나의 생명체로서 그 흐름을 감지하고 반응하며, 때때로 거기서 이로움을 얻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새삼스럽게 경이롭다. 전혀 의도되지 않았지만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자연을 두고 '아름답다'고 말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여름에는 땀을 많이 흘리는 계절에 맞춰 수분이 풍부한 채소와 과일이 등장한다. 오이, 수박, 가지, 토마토. 이들은 모두 몸의 열을 내려주고, 전해질을 보충해주는 자연의 수분 보충제다.
동시에 자외선에 노출되기 쉬운 시기라 항산화 성분이 많은 식품들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 과학자들은 이를 “자연의 자가 조절 메커니즘에 생명체가 최적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가을은 저장과 회복의 계절이다. 열매는 여무는 시간에 맞춰 당도를 높이고, 뿌리채소는 땅속으로 당과 영양분을 농축한다. 면역력에 기여하는 베타카로틴, 안토시아닌, 각종 비타민이 가장 풍성한 때다. 겨울을 준비하는 생명체들의 본능과 우리 몸이 원하는 영양소가 겹쳐진다.
겨울엔 에너지를 비축할 수 있는 식재료들이 많다. 곡물, 콩, 뿌리채소, 견과류. 열량이 높고 보존성이 좋은 식품들이 주로 수확되는 시기다. 추운 날씨에 체온 유지를 위한 대사량이 높아지면서 이런 음식은 생존에 직접적으로 기여한다.
이 모든 변화는 단지 자연의 생장 리듬일 뿐이지만, 그것을 따라 사는 우리는 종종 감탄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안에서 매번 새로운 '조화'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계절을 느끼고,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먹고 자고 쉬는 일. 그것은 자연이라는 더 큰 리듬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조각으로 존재하고 있는지를 받아들이는 일이라 여긴다.
살아 있다는 것은 변화하는 자연에 감응하는 능력을 가진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카뮈는 『결혼,여름』 에서 이렇게 썼다.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지금 도박하고 있는 것은 분명 나 스스로의 삶이다. 뜨거운 돌의 맛이 나는 삶, 바다의 숨결과, 이제 막 노래하기 시작하는 매미소리로 가득한 삶.
미풍은 서늘하고 하늘은 푸르다. 나는 내게 맡겨진 이 삶을 사랑한다.
이 삶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해보고 싶다.
이 삶은 나의 인간조건에 대하여 긍지를 갖게 해준다.
<뭐 그렇게 자랑스러워 할 건 없어>라고 사람들은 흔히 말하지만, 분명 자랑스러워 할 만한 것이 있다.
이 태양, 이 바다, 젊음이 용솟음치는 이 가슴, 소금맛이 나는 몸, 그리고 부드러움과 영광이 노란 빛과 푸른 빛 속에서 서로 만나는 장대한 무대장치가 바로 그것이다. 바로 이것을 정복하기 위하여 나의 힘과 능력을 모두 바쳐야 한다. '
계절감은 어쩌면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생존과 존재의 가장 본능적인 형태일지 모르겠다. 뜨거운 여름도, 어두운 겨울도, 그리고 그 사이의 무수한 감각들을 ‘내 몫’으로 받아들이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는 일은 과학적으로는 호르몬과 대사일지 몰라도 철학적으로는 사랑에 가깝다.
미풍은 서늘하고 하늘은 푸르다. 나는 내게 맡겨진 이 삶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