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라는 착각 속에
커튼 사이로 빛이 스며든다. 평범하고 아주 익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갑자기 머릿속에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지금 내 얼굴에 닿은 이 햇살, 이건 진짜 지금의 태양일까?”
말이 되나 싶지만, 실제로 이 질문엔 정확한 답이 있다. 아니다. 이 빛은 8분 20초 전의 태양에서 출발한 것이다.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빛의 속도는 초당 약 30만 km.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는 약 1억 5천만 km. 이 거리를 나누면 약 500초, 즉 8분 20초가 나온다. 우리는 매일, 8분 20초 전의 태양을 보며 살아간다.
그러면 이쯤에서 또 다른 질문.
“그 8분 20초 동안 우리 위엔 아무것도 없었던 걸까?”
우리는 늘 지금을 살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지금이라고 말하는 이 순간도, 사실은 과거의 도착에 불과하다. 실제 현실과 인식 사이엔 언제나 지연이 있다. 사랑도, 이별도, 뉴스도, 감정도. 우리는 늘 한 발 늦은 정보를 받아들이며 반응한다.
우리가 진짜 사는 건, '지연된 현재'다.
햇살이 들어온다. 동시에 숨을 들이쉰다. 이건 하루에 수천 번 반복되는 일이다. 그런데, 그 공기 속에 수천만 년 전 생명체의 숨결이 들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상상해본 적 있는가?
공기 중 약 1%를 차지하는 아르곤(Ar). 이 기체는 반응성이 거의 없어 다른 물질과 결합하지 않고, 분해도 되지 않는다. 쉽게 말해, 마셔도 그대로 나와서 또 떠돈다. 수억 년 전 공룡이 내쉰 그것일지도, 오래전 누군가의 마지막 숨이었을지도 모른다.
숨은 기억보다 오래 남는다. 우리는 과거를 마시고, 미래로 내보낸다.
그럼 이제 ‘오늘’이라는 시간감각을 조금 더 따라가보자. 오늘이 있다는 건, ‘시간’을 느낀다는 의미다. 그런데 사실, 인간은 시간을 감각기관으로 직접 느낄 수 없다.
눈으로 빛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듣듯, 시간을 ‘감지’하는 감각기관은 없다. 대신 우리는 변화를 인식하며 시간을 느낀다. 시계의 움직임, 햇살의 기울기, 냉장고 속 음식의 상함 같은 것들.
그리고 그 감각은 뇌의 한가운데, 해마와 시상하부에 걸쳐 만들어진다. 시간은 실제로 ‘존재’한다기보다, 뇌가 만들어낸 패턴과 질서에 가깝다. 그래서 같은 하루도, 누구에겐 짧고 누구에겐 길다.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뇌가 매 순간 다시 계산하는 감각이다.
마지막. 오늘 하루의 기분은 ‘하늘’에 따라 다르다고 느낀 적 있을 것이다. 기분 탓이 아니라, 실제로 과학적 이유가 있다.
햇빛은 눈을 통해 시상하부의 SCN(생체시계 핵)을 자극하고, 이는 우리 몸의 멜라토닌과 세로토닌 분비를 조절한다. 날이 흐리면 세로토닌이 줄고, 집중력과 기분이 떨어진다.
그래서 비 오는 날은 괜히 처지고, 해가 쨍한 날은 막연히 괜찮다.
하늘은 기분을 좌우한다. 아니, 정확히 말해 기분을 조절하는 호르몬의 리듬을 쥐고 있다.
지금 이 순간. 햇살이 조금 늦게 도착하고, 숨은 아주 오래된 시간을 안고 있으며, 기분은 하늘의 색에 의해 조절되고, 시간은 뇌의 조용한 계산 속에서 정해진다.
오늘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하루가 아니다. 그건 빛과 공기, 감정과 생체 리듬, 그리고 기억과 감각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생명 현상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살아 있고, 그 모든 것들을 조금 늦게 감각하며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