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것과 받는 것

그리고 그 사이의 윤리

by 영일이

주고-받는 행위란 무엇일까.


우리는 매일같이 그걸 하고 있지만 그 의미나 필요성을 곱씹어본 적은 드물다.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무심하게. 그러나 문득 멈춰보면 그 안엔 우리가 간과해온 감정과 권력, 그리고 침묵이 숨어 있다.

먼저 받는다는 건 본질적으로 수동적인 행위다.


무언가를 받는다는 건 누군가의 결정, 누군가의 여유, 누군가의 권한에 따라 내게 ‘어떤 것’이 도달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돈이든, 칭찬이든, 기회든.

받는 순간엔 고마움이 있지만 어딘가 위태롭다. 받는 행위로서의 행복은 언제나 끝 혹은 빚이나 회수를 예감하게 만든다. 심리학적으로도 받는다는 건 단순한 혜택이 아니라 때론 수동성과 의존성, 더 나아가 굴욕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받기’ 위해 자신이 ‘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려 들고 “내가 받아도 되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성인다. 그래서 도움을 받는 이는 늘 미안해하고, 조심하고, 작아진다.

반면 주는 쪽은 다르다.


능동적이고, 선택적이다. 주는 사람은 ‘주는 순간을 만든 사람’이다. 칭찬을 던지는 상사, 돈을 쥐여주는 누군가. 때로 주는 자는 내가 만든 ‘상대의 감정변화’를 바라보며 은근한 권력감을 맛보기도 한다. 그래서 주는 쪽은 자연스럽게 ‘우위’에 서게 된다.

신경과학은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을 들려준다. 도움을 줄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 복측선조체는 도파민 회로와 겹친다. 즉 주는 행위는 생물학적으로도 쾌감을 유발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회학자들은 이에 경고를 더한다. 이런 ‘주는 기쁨’은 보편적 본능이 아니라, 계급과 세대에 따라 구성된 감각일 수 있다고. 결국 심리적 안전과 사회적 여유를 가진 사람만이 ‘주는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이제 줄 수 있을 정도가 되었구나.” 그 감정은 때로 특권의 언어인 셈이다.

이 같은 논리에서 결국 주고-받는 구조란 '주는 자의 도덕’과 ‘받는 자의 침묵’ 위에 얹힌 비대칭적 윤리일 수 있다.

그러던 중 흥미로운 연구 하나를 발견했다. 2023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에 따르면 소득과 관계없이 자신을 상층 계층으로 인식할수록 기부나 봉사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충분한 자원’은 단지 경제적 여유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주는 행위 역시 물질적 자산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체감과 태도의 문제라는 의미다.

앞서 ‘줄 수 있는 사람이 주는 것이다’라는 맥락과는 전혀 다른 측면이다.


이에 다시 고민하다 결국 주는 것의 본질은 내가 ‘포기할 수 있는 걸’ 내어주는 게 아니라 '잃을 수 있는 걸' 내어주는 일이지 않을까, 란 결론에 도달한다.


주는 행위란 정체성의 분할이며 자기 존재 일부의 이양이다. 그게 없는 행위는 그저 ‘효율적 분배’나 '자선'일 뿐이다.

진짜 주는 이는 자신이 주었다는 사실을 잊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받는 이가 덜 미안하게 느끼도록 기꺼이 스스로를 지운다.

또한 진짜 받는 이는 그 받은 것을 흉내내지 않고 즉시 갚으려 들지도 않는다. 그저 그 선의를 다른 누군가에게 다른 방식으로 흘려보낼 따름이다.


주고-받는 행위에 우리가 정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아마 이같은 행위가 갖는 아름답고도 슬픈 윤리 때문일거라 여긴다.

역시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기꺼이 받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내 존재 자체가 때로 누군가에겐 하나의 선의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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