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자주 웃어야지
증명사진은 늘 실망스럽다. 미용실 거울은 더 심하다.
조명 때문일까 아니면 내 기분 때문일까. 분명히 화장도 했고, 옷도 잘 입었는데 거울 속의 나는 오늘따라 낯설고 못나 보인다.
반면 어떤 날은 엘리베이터 안 거울에 비친 내가 괜 찮아 보인다. 후면 카메라에 찍힌 예상치 못한 스냅 이 이상하게 매력적일 때도 있다.
그럴 땐 잠깐 내가 '타인의 눈에 보일 내 모습'을 보 는 것 같아 마음이 묘하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자기 얼굴을 마주친다. 카페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 지하철 유리에 비친 실루엣, 셀카 찍을 때, 줌 미팅할 때.
그 모든 순간마다 '내 얼굴'은 다르게 존재한다.
그런데 그 중 어떤 얼굴이 진짜일까?
얼굴을 비춰보는 가장 흔한 도구인 거울.
거울은 빛을 반사할 뿐이다. 물리적으로는 단지 '앞 뒤 방향'을 바꿔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그걸 '좌우가 바뀌었다'고 착각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뇌는 거울 속 나를 '나와 마 주 앉은 사람'처럼 재해석하기 때문이다.
전면 카메라 셀카는 그래서 편안하다. 거울처럼 좌 우 반전된 이미지라 내가 오랫동안 자화상처럼 익 숙하게 바라본 나다.
하지만 후면 카메라로 찍힌 얼굴은 낯설다. 렌즈 왜 곡, 조명, 각도 때문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건 '진 짜 타인의 시점'에 가까운 얼굴이기 때문이다.
이러나 저러나 우리는 우리 얼굴을 직접 볼 수 없 다. 늘 반사된, 왜곡된, 해석된 상만을 본다.
그렇다면 왜 어떤 날은 예쁘고, 어떤 날은 그렇지 않을까?
인간의 얼굴 인식은 눈이 아니라 뇌가 한다. 사람의 얼굴을 보는 순간 시신경은 그 정보를 후두엽의 시 각 피질로 보내고, 여기서 기억과 감정, 판단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뇌는 익숙한 얼굴을 더 '예뻐보이게' 조작한다. 예로 거울에 익숙한 내 얼굴은 후면 카메라에선 항상 어색해보인다.
이건 심리학에서도 밝혀진 현상이다. 우리는 익숙한 것을 더 선호하고(노출 효과), 낯선 것을 경계한 다(인지 부조화).
그렇다면 타인은 나를 어떻게 볼까?
타인의 뇌는 나의 얼굴을 이전 기억, 말투, 태도, 분 위기, 표정, 목소리 톤과 함께 하나의 '사회적 총합'으로 해석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이상하게 생겼다'고 느낀다면 그 건 그 사람의 형태가 아니라 내 감정이 얼굴에 투사 된 결과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사기꾼에게 속는다. 외모는 단정하고, 말은 매끄러우며, 표정은 온화하다. 우리 뇌는 빠르게 “이 사람은 믿을 만해 보여.”판단 한다.
이러한 판단은 대부분 0.1초 안에 일어난다. 그 덕 에 사회생활이 가능해지지만, 착각을 유발하기도 한다.
동물들도 서로를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 기린은 서 로의 무늬를, 비둘기는 짝의 울음소리를, 코끼리는 동료의 냄새를 기억한다. 이들은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 후각 등 다양한 감각을 통해 서로를 인식한 다. 외양이 아닌 '존재 자체의 흔적'을 감지하는 셈 이다.
새삼스럽지만 문득, 나는 진짜 내 얼굴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든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진짜 사물이 아니라 반사된 그림자일 뿐”이라 했고, 라캉은 자아의 형성이 ‘거울 단계’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어린아이가 처음 거울에 비친 자신을 인식할 때 비로소 ‘나’라는 정체성을 만들기 시작한다고.
과연 나는 거울 없이, 사진 없이, 타인의 말도 없이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그때의 나는 어떤 얼굴을 가지게 될까? 내가 사랑받았던 기억으로 빚어진 얼굴일까 아니면 스스로 받아들인 외형일까?
프리드리히 니체는 말했다. “네 얼굴에는 네가 살아온 날들이 새겨진다. 그러니 너는 네 삶을 창조하듯, 네 얼굴을 빚어야 한다.”
얼굴이란 보여지기 위해 존재하는 동시에 그 자체로 존재의 흔적이다.
그래서 결론.
나는 그냥 더 자주 눈 맞추고, 더 자주 웃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