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소설로 지은 집
한 해 전 일 월초. 밖에서 두어 달 머물다 돌아온 날이었다. 한겨울 강바람이 어찌나 매섭던지! 문짝에 댄 손바닥을 떼자마자 살갗이 쩍쩍 갈라질 것만 같은 추위가 어김없이 닥친 날이었다. 얼음장 같은 유리 문짝을 열고 신발을 신은 채 거실에 들어선 나는 우선 들고 온 배낭과 짐을 바닥에 부렸다. 머릿속으로는 군불을 먼저 때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안방 문을 열었고, 눈에 들어온 쌀 포대 아가리를 열어젖혔다. 거기에 놀랍게도 생쥐 세 마리가, 엄지손가락만 한 분홍빛 살갗인 생쥐가 쌀알 틈에 묻혀있었다.
얼핏 봐도, 갓 난 게 분명한 생쥐 세 마리가 얼어 죽어 있었다. 나는 손으로 쌀을 헤쳐 세 마리 생사를 다시 확인했다. 눈을 뜨지도 못한 분홍빛 살갗인 생쥐 세 마리는 나란히 죽어 있었다. 어미가 겨울 추위를 이기고 살아나라고 여기다 낳은 것일까. 나는 무심코 어미 쥐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순간은 잠깐이었고, 과연 이 쌀을 먹을 것인가를 고민했다. 나는 오래 갈등하지 않았다. 쌀은 반나마 남았고, 이 정도라면 한 달 이상은 너끈히 먹을 양이었다. 나는 손으로 죽은 갓 난 쥐들을 집어냈고, 나중에 묻어줄 요량으로 마당 텃밭에다 던져버렸다.
새끼 쥐들이 잠들었던 쌀을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 내게 중요했던 것은, 상상으로는 어림없는, 겪지 않으면 내 몸과 영혼에 아로새길 수 없는 이 장면을 언젠가는 소설에 담아내리라는 다짐이었다. 이런 내게 현실과 소설 세계를 구분하기란 얼마나 무의미한지! 소설을 쓰는 이 순간은 현실이 아닌가? 나는 무한한 우주를 정처 없이 떠도는 존재가 아니다. 사람들이 사랑하고 싸우고 살아가는 이 지상에서 유한히 머무는 한낱 인간일 뿐이다. 누군가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고, 누군가는 기름 솥에서 닭을 튀기고, 누군가는 침실에서 사랑을 나누고, 누군가는 로또를 사서 당첨 번호를 확인하며 하루를 맞이한다. 그 누구인 우리는, 모두 지상에서 주어진 유한한 시간을, 언제 기습적으로 막을 내릴지 모르는 나날을, 마치 영원한 삶을 보장받은 듯 착각하며 무언가를 움켜쥐려고 몸부림치는, 한낱 인간일 따름이다. 다만, 나는 소설을 쓴다. 그게 지상에 발 딛고 사는 나라는 인간이 존재하는 방식이기에.
겨울밤, 군불 땐 건넌방에 몸을 누이고도 나는 묻고 또 묻는다. 인생의 ‘피와 살’인 시간을 뭉텅 내주고 소설을 얻어내는 삶이 과연 제대로 사는 것일까. 그 물음은 늘 나를 불안과 공포로 이끈다. 비닐로 감싼, 찢어진 문풍지가 펄럭이는 쪽문 틈으로 칼바람이 몰아쳐 들어온다. 나는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쓴다. 입안에 푸석한 먼지가 씹힌다. 잠을 청하는 나를 한 가지 의문이 끊임없이 파먹는다. 과연 이게 내가 치러낼 삶인가? 숨을 헐떡이며 헤쳐 나아가야 할 현실인가? 아니면 소설 속 장면을 내가 살아내는 것인가?
소설에 빠져있다간 한데서 자야 할 판이었다. 일단 오늘 밤 잠잘 곳을 알아봐야 했다. 일 순위로 떠오른 이는 충주에 사는 후배 최였다. 사과 과수원을 하는 그와 통화한다면 문제 해결은 간단했다. 그의 시골집이 여기서 멀지 않았다. 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보다 더 당혹스러워 한 건 김이었다. 집을 코앞에 두고도 들어갈 수 없는 이 초현실적인 상황을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는 듯, 그는 연신 나 원 참, 을 연발하며 끌탕을 해댔다. 내가 거듭 전화해도 먹통이던 최가 김이 전화를 걸어서야 목소리를 전해왔다. 그러나 혹시나 했건만 역시나 최는 취해있었다. 횡설수설하는 그에게 내 집 상황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혼자 먹는 술이건만 맛나게 마시라고 응원해준 뒤, 나는 최와 통화를 마쳤다. 다음번 떠오른 인물은 강 건너 강원도 불온에 사는 홍이었다. 그러나 홍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오늘이 주말임을 알았고, 주말에는 도시에 나가 일하는 홍의 아내가 시골집에 돌아온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챘다. 남한강에서 더는 연락할 데가 없었다. 여관에 들까도 생각했지만, 오늘 밤만큼은 홀로 여관방에서 버틸 자신이 없었다. 나는 결단을 내렸다, 집에 들어가기로! 미우나 고우나 쑥대밭 집은 내가 머물 곳이었다. 전기가 끊겨 죽은 집으로 전락했건만 나마저 외면한다면 영영 집 구실을 못 할지 몰랐다.
나는 김에게 집에 들어가겠다고 결심을 밝혔다. 김은 즉각 반발했다. 전기도 안 들어오는 집에서 잘 수 있나, 자네 집은 사람이 살 데가 못 된다고 그는 내 결정을 미심쩍어했다. 김에게 무모하게 비칠지라도 그게 바로 내가 사는 방식이었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루 이틀 겪은 것도 아닌데 뭘 그러냐고, 김을 안심시켰다.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던 김도 할 수 없다는 듯 차가 있는 강변길로 돌아섰다. 내가 왜 모르겠는가. 김은 친구를 혼자 버려두고 떠나는 게 아니었다. 김도 그리 알 거였다. 그리고 김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내가 이런 사태에 익숙한 인간임을! 김이 탄, 전조등을 밝힌 차는 곧장 강변길을 달렸다.
나는 늘 그랬듯 그 자리에 서서 차를 눈으로 좇았다. 오랜 세월 숱하게 겪어왔음에도 사람을 떠나보내기란 참으로 힘겹다. 나를 두고 멀어지는 차를 지켜보기란 얼마나 가슴이 휑한지! 나는 어둠에 잠기는 김의 차를 하염없이 눈에 담았다. 저 안에 김이 있군…자꾸 내게서 멀어지고 있어…잠시 뒤 산모퉁이를 돌면 내 눈에서 사라지겠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는 김을 태운 차의 꽁무니 불빛이 안 보일 때까지 붙박인 듯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