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도 나의 자원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의 침묵이 있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깨달았다. 정말 자원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결핍에서 오는 아픔이 치유된다면 보다 나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렇게 된다는 점에서 자원이 될 수 있다. 내가 아픔을 느꼈던 것만큼, 아픔을 느낀 분야에서 일어설 수만 있다면 아픔을 느끼는 사람을 제대로 도울 수 있고 누군가의 희망이 되어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겐 많은 것이 없었다. 돈도 없었고 부모의 따뜻한 관심이나 애정도 형제간의 우애도 없었고, 심지어 남편도 없었다. 가장 최악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나도 없었다. 잘하는 것도 없고 똑 부러지고 야무진 성격도 왜 없는 걸까, 오랜 시간 자학도 했었다. 나에게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그 흔한 장점 하나 없는 그런 존재 같았다. 애초에 아무것도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 속에 한줄기 빛을 찾아 혼자 헤매는 것처럼, 해 질 녘 깊은 산속에 홀로 서성이는 것처럼, 그게 마치 내 삶의 전부이고 끝인 것처럼...... 그렇게 살아왔다.
그래서 우울했고 그래서 슬펐다.
그러나 사랑은 할 수 있었다.
내 아이들을 사랑해야 했다. 내 주변의 고양이를 사랑하고 보살필 수는 있었다. 불쌍하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작은 행동이었으나 작은 생명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사랑하면서 느끼게 되었다. 살아 있음의 그 소중함과 고마움을. 그리고 나 자신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자 변화가 시작되었다. 나 자신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내가 원하는 바를 깨닫게 되었으며 단점만 있는 줄 알았던 내가 장점 또한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나의 일부이며 나에게 아이들이 소중하듯, 나 또한 소중함을 그리고 아이들을 돌보듯 고양이를 돌보듯 그렇게 내가 나를 돌봐야 함을 알게 되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 나는 깨닫게 되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많은 것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소중한 것을 가졌다는 사실을.
사랑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가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사랑을 할 수 없었지만, 용서에서 시작된 사랑은 내 주변에서 내 가족으로 그리고 나에게로 왔다. 그것은 치유라는 이름이었고 또 다른 이름은 회복이라는 이름이었다. 오랜 시간 상담을 받고, 오랜 시간 상담을 공부하면서도 상처는 계속되었지만 내가 나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이후, 이전보다 더 두텁게 나를 치유하며 본연의 나를 찾아갔다. 그리고 나의 결핍이 마음이 아픈 내담자를 치유하는데 자원이 되어 사용되었고 그들의 회복이 또다시 내게 자원이 되어 이 길을 계속 걸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 옆에 고양이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