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건네준 시간~27화

조용한 삶의 시간~달맞이꽃

by 박영선

저녁 산책길에서 만난 달맞이꽃.

왜 다른 꽃들과 달리 이 꽃은 밤에 꽃을 피우는 걸까.

한참을 바라보며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대부분의 꽃들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낮에 꽃을 피운다.
햇빛 아래에서 자기 빛깔을 드러낸다.

하지만 달맞이꽃은 사람들의 하루가 조금씩 끝나 가는 시간,
길 위의 발걸음이 뜸해지는 저녁 무렵에 비로소 꽃을 피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하나 떠올랐다.

북아메리카 원주민들 사이에는 달맞이꽃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밤길을 걷던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을 때
길가에 피어 있는 노란 꽃을 발견했다고 한다. 달빛 아래에서 그 꽃들이 작은 등불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달맞이꽃을 '밤길을 밝혀주는 꽃'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나는 한동안 길가에 피어 있는 달맞이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키가 크지 않은 줄기 끝에 노란 꽃이 하나씩 달려 있었다.

둥글게 펼쳐진 네 장의 꽃잎이 달빛을 받은 듯 부드럽게 빛났다.

화려한 꽃은 아니었지만 어둠 속에서는 그 노란 빛이 유난히 또렷하게 보였다.

낮에는 잘 눈에 띄지 않던 꽃이 밤이 되자 조용히 자기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의 밤길을 작게 밝혀 주듯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꽃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기 위해 피는 꽃이 아니라 자기 시간을 살기 위해 피는 꽃인지도 모른다고. 사람들이 가장 바쁜 낮이 아니라 세상이 조금 조용해지는 시간에 피는 꽃.


생각해 보면 우리 삶에도 그런 시간이 있다. 앞으로 나아가는 낮의 시간도 있지만

하루를 조용히 내려놓는 밤의 시간도 있다. 누군가의 시선을 받지 않아도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시간.


달맞이꽃은 그 시간을 닮아 있다. 낮의 화려함과는 조금 다른 조용한 시간.

하지만 그 시간 역시 우리 삶을 이루는 소중한 시간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밤. 길가에 피어 있던 달맞이꽃의 노란 빛이
내 마음을 환하게 밝혀 주는 것 같았다.


꽃 27화~달맞이꽃 본문.png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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