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淵
'틱'
하는 작은 울림과 함께 손톱의 거스러미가 벗겨졌다.
살점과 미처 다 뜯겨나가지 못한 거스러미 사이의 작은 균열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순간, 흑백이었던 내 세상에 붉은빛 하나가 스며들며 주변을 다채롭게 밝혀주었다.
강인한 생명력이, 나에게도 존재한다는 울림에 전율했다.
살아있구나!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너를 들여다본다
-프리드리히 니체-
나는 태생적으로 혹은 환경적으로 깊은 심연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온전히 풀어내지 못한 채 응어리진 그 깊은 구렁텅이는 이따금씩 큰 쓰나미가 되어 나를 집어삼키곤 한다. 일상에서의 압박, 내가 나에게 주는 압박,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변인의 사정에 의한 압박 등, 여러 복합적인 모종의 사건들이 겹치며, 그 쓰나미는 또다시 나를 덮쳤다.
휘몰아치는 파도 속에서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른다.
쓰나미의 진원지인 심연을 똑바로 마주해야 하는가? 심연을 묵인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혼란스러운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저 일상을 보냈다. 그러던 사이, 삶이 무미건조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거센 파도를 제쳐보려 어떻게든 움직였다. 결국, 심연을 못 본 체 하고.
우연히 손톱 옆에 자란 거스러미를 떼느라 피가 나왔다. 이것은 자동차나 비행기 따위의 연료와 같이, '나'라는 것을 움직이게 하는 연료처럼 느껴졌다. 이 우주에 작은 생명체로서 태어난다는 기적을 행한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강한 생명체인 나인 것에 위로를 얻었다.
뜻밖의 사건에서 나는, 이번 쓰나미를 무사히 극복할 수 있었다.
언젠가는 내 심연을 온전히 바라보고, 그것을 감내할 정도로 성장하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