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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잎 Oct 23. 2024

01. <17살 자퇴생>

: 내 성격의 기원



'노력'



단어가 주는 이미지라는 게 있다. 나는 노력이라는 단어를 보면 코딱지가 연상된다. 지독하게 작은 콧구멍 속, 간질간질 방해되는 털들 사이 힘겹게 자리 잡고 있다. 누군가 힘으로 떼어내기 전까지 묵묵히 뚝심 있게 자리를 지킨다. 간략히 말하면, 코딱지의 작고 단단한 모습과 꼬질꼬질한 모양새가 '노력'과 닮았다.



목표를 이루고자 행위를 지속해 나가는 힘. 과정이 힘들 수도, 내가 조금 망가질 수도 있지만 결국 돌이켜보면 빛났던 순간이 되는 것들. 내게 노력이란 그렇다.



삶에 꼭 필요한 말이지만, 이 단어를 찐하게 좋아하진 않는다. 너무나도 진부하고 당연하게만 느껴져서다. 같은 의미로 다르게 말해서, 나는'과정'을 좋아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과정을 즐기는 나!'







사실 난 글쓰기 하나만을 바라보고 자퇴했다. 글 쓰는 게 너무 좋아서 집중적으로 배워보고 싶었다. 정확한 분야는 소설이었다. '그렇다고 자퇴를 해??!!' 하고 놀랄 수 있다. 열일곱 살 팔월의 그땐 지금은 엄두도 못 낼 용기와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왕복 2-3시간 왔다 갔다 글 쓰는 걸 배우러 다녔다. 매주 과제를 하고, 검정고시 공부도 병행했다. 시험, 수행평가, 자격증, 다이어트... 늘 결과만을 바라보다가 인생 처음으로 과정이 즐거운 노력을 찾았다. 이때 과정을 즐기는 법을 배웠던 것 같다.



주변에 있는 물건 하나하나가 글의 소재였고,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소설이라는 방패로 풀어냈다. 수업시간마다 차근차근 수줍게 과제로 적어간 글을 읽었다. 선생님은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숙제가 숙제로 느껴지지 않았던 인생 유일한 시간들로 기억된다.



전철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은 지금도 문득문득 떠오른다. 네모난 전철 창문으로 들어오던 저녁 햇살과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들. 퇴근 시간과 겹치면 몇 정거장은 서서 갔는데, 그때마다 창문멍을 때렸다. 의자에서 꾸벅꾸벅 졸고 나면 품속 흰 백팩에 묻어있던 분홍색 틴트 자국. 그때의 온도가 느껴지는 듯하다.







지금과 다르게 중학생 때는 성적에 목매달았다. 스스로 세워둔 계획에 어긋나면 자책, 죄책감이 심했다. 열심히 한 과목 성적이 낮고, 오히려 애쓰지 않았던 것들의 성적이 좋았던 적이 있다. 이런 일이 종종 있던 후로 난 결과를 맹신했다. 어떻게 한 건지는 중요하지 않고, 오직 결과만이 판단의 길을 열어준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완전한 사람이 없듯이, 나도 그랬다. [엄마의 영향 50%] + [자퇴 후 받은 영향 50%] 비율로 지금의 내가 완성된 듯하다.


**

(엄마의 영향이 50%인 이유는, 자퇴한다는 딸한테 쿨하게 "그래, 해~!" 하는 엄마가 정말 드물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별한 엄마에게 많은 걸 물려받았을 것이다.)



성격이 변하면서 여유를 찾아갔다고 하면 맞을까? 자연스럽게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괜찮을 거라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내 모습이 조금 뿌듯하기도 하다.



목차를 만들 때 01번으로 나의 이야기를 넣은 것도 이 때문이다. 좋아하는 걸 말하는데 날 빼놓을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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