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서 Jan 09. 2024

왜 사는지에 대한 나의 정답 2

죽지 못해 살거나, 죽기 살기로 살거나

  결국엔 그냥 이런 질문을 왜 하냐며 대충 생각을 무마하고서 살아갔습니다.


  어느 날 인스타그램에서 릴스를 보던 중,  20대인지, 30대인지, 40대인지 헷갈리는 얼굴인 사람이 있길래,

도대체 몇 살인 지 알아보려고 프로필에 들어가 봤습니다. 


  그분의 한 줄 소개는 이러했습니다. "죽지 못해 살거나, 죽기 살기로 살거나." 

가오가 잔뜩 들으신 분이셨는데, 이 문구를 쓴 게 너무 웃겼습니다.


  그러다가 이 말이 뭘 의미하나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죽음이 정해진 삶에서 한정된 삶을 불행에 지배당해 살 것인가, 불행을 선택하며 살 것인가?

저는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삶을 대충대충 살다가, 후회하고 열심히 살기를 반복하던 때에 "죽지 못해 살거나, 죽기 살기로 살거나"라는 말이 저에게는 "결국엔 수면 위로 떠오르려고 할 것이다."라는 말로 다가왔습니다.

죽는 게 쉬우면, 왜 살아야 하는 지를 생각했을 때, 쉽게 죽었겠지만, 겁나서 못 하잖아요.


  이왕 사는 거 어차피 못 죽어 살라에는, 그냥 죽기 살기로 사는 건 어떤가요?

어차피 다시 삶에 몰입하기 위해,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뒷걸음질 친 길을 다시 가야 한다면 그냥 열심히 살아서 앞으로 나아가는 건 어떤 가요?


  내가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 지 않을 때, 내가 다시 돌아가야 할 길만 멀어집니다.

즉, 어차피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려 할 것이기에, 깊이 들어가지 맙시다.


Q. 왜 살아야 하는가? 

A. 죽지 못해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에 나는 수면 위로 떠오르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Q. 그럼 어떻게 살 것인가?

A. 최선을 다해 살 것이다.




이전 04화 왜 사는지에 대한 나의 정답 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