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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고양이 Oct 16. 2024

너의 골골 송이 들려.

고양이가 주는 위안

어떤 아나운서가 갱년기에 걸린 자신을 설명하면서 눈썹 빼고는 다 아팠다고 했다.

나는 아직 그 방송을 봤던 때를 잊을 수 없다.

과연 사람이 그렇게 아플 수 있을까?

믿지 못했던 것 같다.


막상 내가 갱년기에 처하니

그 말이 무슨 뜻으로 한 이야기인지 알게 되었다.

호르몬이라는 것이 그렇게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이 증상이 얼마나 지속될지 두렵기만 했다.


통증은 극심한 무기력증을 달고 돌아왔다.

배가 아예 안 고프기도 또 심한 허기에 시달리기도 했다.

증상이 어깨동무하고 온 불안은

내 삶을 통째로 집어삼켜 버렸다.

나는 신나게 달려오던 길의 중간에

멈췄다. 그리고 내렸다. 내 앞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었고, 지금껏 달려온 길도

보였다. 나는 그렇게 이 순간 멈추어 내리는 선택을 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도망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게 뭐 어떻다는 건가.

누구든 도망쳐도 된다. 때로는 도망쳐도 보고, 때로는 멈춰도 봐야 한다.

그래야 그 길이 맞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사람이 정해진 길로만 갈 필요가 있을까.


처음에는 사람들이 내게 왜 쉬냐고 물었다.

난 쉰 적이 없다고 말해주었다.

내려서 주변을 보고 어느 길로 갈지 찾는 것이 쉬는 것인가?

난 멈춰서 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왜? 쉬면 안 되나?


어떤 때 그 순간 좀 더 가서 쉴 걸이라고 후회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후회하지 않는 삶이란 없다. 두 선택지에서 하나를 선택한다면

후회란 늘 데리고 다녀야 할 동반자가 아닌가.


왜 이리 어두운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그렇다.

고양이 골골 송이 사람에게 안정과 불안을 낮춰주는 효과를 준다는 사실에 대해

에피소드를 풀려고 시작한 것인데, 이야기를 다시 밝은 쪽으로


고양이에게는 두 가지의 종류의 골골 송이 있다.

첫 번째 골골 송은 나 여기 있고, 현재 편해를 나타낸다.

고양이의 골골 송은 어미에게 젖을 먹고 있는 아깽이들이 자신의

존재와 현 상황을 알려주는 소리라고 한다.

즉 어미가 새끼들이 무사히 젖을 먹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게 서로 주고받는 신호였던 것이다.

그러기에 골골 송은 그런 이유로 맛있게 젖을 잘 먹고 있는 행복감의 표현인 것이다.


두 번째 골골 송은 무서워. 여기 불안해를 나타낸다.

불안한 상황에서 두려움을 드러낼 때 내는 소리다. 앞선 상황과 정반대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이 소리를 냄으로 스스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용도로도 쓰인다고 한다.


두 골골송을 구분하는 것은 소리에 높낮음으로 판별가능하다.

첫 번째는 높고 두 번째는 낮다.


중요한 점은 골골 송은 듣고 있는 집사의 마음에도 안정을 가져다준다는 점이다.


제리는

밥을 달라고 할 때 나를 부르고(애교를 있는데로 부리며 스킨십한 후)

밥자리에 앉아서 나를 빤히 바라본다.

그 모습은 참 거절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거절하지 않고 조금씩 자주 주는 식으로 달랜다.

내가 밥을 주려고 일어서 가까이 오면

제리는 꾹꾹이를 하며 골골송을 낸다.

밥을 먹기 전에 그 행동을 통해

나는 제리가 날 엄마로 여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몇 가지 더 있는데 손으로 짜주는 츄르를 먹는다는 점.

손에 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큰 애정의 표현이다.

다른 식구들과 나를 부르는 소리가 다르다는 점.

엄마에 가깝게 날 부른다. 길게 부르는 편으로 다른 식구를 부를 때와 구분 된다.


제리는 독립적이고 사람과 가까이 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 브리티시 숏 종이기에

이런 면은 상당한 신뢰감의 표현이다.


이 이야기가 엄청 훈훈한 이야기로 끝맺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면

오판이다.

그랬다. 그렇게 착각했었다.

내가 일하는 날엔

아들이 그런 존재였던 것이다.

내가 없으면 돌봐주는 사람이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근데 내가 있는 날도

아들이 돌아오면 엄청 반기고 따라가서는 거의 그 방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런 귀여운 배신자.


가끔 아들 방에 가면

바람피우다가 들킨 사람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나를 못 이기는 척 따라 나올 때가 있다.

"이 녀석아. 나 그렇게 속 안 좁아. 형도 공부는 해야지. 그래야 대학 가지."

나도 골골송을 내고 싶다. 현재 난 두 번째 골골송을 내고 있지만,

언젠가는 첫 번째 골골송을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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