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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하숙집 고양이
Oct 23. 2024
네가 보는 세상은 파랗고 초록해
적록 색맹 고양이
엄마 제리는 세상을 어떻게 볼까?
딸애의 뜬금없는 질문에 나는 고민에 빠졌다.
딸애 침대를 제 침대마냥 쓰고 있는 제리 옆에 어색하게 걸터앉아
붙어 있으려는 침대주인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제 것 마냥 쓰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닌 제리.
이제 거의 제리 집에 우리가 얹혀사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정작 제리가 보는 세상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예전 개들이 흑백에 가까운 세상을 보고 있다는
투우를 하는 소도 붉은 천의 색을 못 보고 흔들림을 인식해 공격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제리도 흑백 티브이로 세상을 보고 있는 게 아닐까?
고양이들은 세상을 어떤 색으로 보고 있는 걸까.
답부터 말하자면 적록색맹이란다.
사람은 파랑, 빨강, 초록을 분간할 수 있다.
거기에 비해 고양이는 빨강을 제외한 파랑과 초록만
분간할 수 있다.
시력도 사람보다 현저히 낮기에
0.1에 가깝고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기에 멀리 보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편함을 못 느끼는 것은
다른 능력치 때문이다.
특히 야간 투시 능력 같은 경우 야간에 사람보다 훨씬 잘 볼 수 있다.
또 동체시력이 뛰어나 움직이는 것을 잘 볼 수 있기에
야간 사냥에 최적화되어 있다.
또 신기하게도 고양이는 자외선이 보인다고 한다. 햇볕에 누워 있는 그들은 사실 오로라와 비슷한 느낌으로 자외선을 보고 있단다.
창틀에 앉아 멍하니 밖을 보고 있지만 사실은 멋진 광경을 구경 중이었던 것이다.
이건 좀 부럽다.
또 동체시력 때문에 미세한 전등의 깜박임을 감지하므로 미러볼 아래 있는 느낌일까 암튼 스트레스 상황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여태껏 제리가 핑크 생쥐를 색 때문에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제리에게 핑크는 브라운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최근 핑크 생쥐가 없어지고
브라운 생쥐를 던져주니 그것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이게 같은 색이라 그런 것 같다.
집사들은 파랑이나 초록 색 장난감을 사는 것이
고양이의 시선을 끌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알아 두면 좋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집사들은 축구를 본다고 주장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넓은 잔디밭을 보고 있고
거기다 빨리 움직이는 공을 보고 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예를 들면 테니스를 본다면
사람들은
소리로
공의 이동을 인지하지만
고양이는 소리보다 앞서 움직이는 공을 정확히 본다는 것이다.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그 광경을 볼 지 궁금하다.
제리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가
집사가 던지는 생쥐를 따라 뛰어가
생쥐를 앞발로 탁하고 치는 놀이다.
참 좋은 골키퍼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놀이는 할수록 많이 약이 오른다.
이건 뭐 내가 던지기 전에 부정출발하지
심지어 길 중간에서 불법 뉴턴해 낚아채지를 않나
결승점에서 버티고 이동하지 않기도 한다. 부정주차까지.
많이 달려야 운동이 되는 법인데
요령만 늘어서는
던지기 실력만 나날이 늘어나는 지경이니
지금 와서 반백살이 된 내가 던지기 실력
올려서 무슨 소용인가 어깨만 아프지.
나는 야구 제리는 축구를 하고 있으니.
이 경기는 내가 던지는 생쥐를 잘 보고 달려가서
잡아야 하는 경기인 건데.
룰을 파괴하는 제리라는 녀석 때문에
욱신하는 어깨를 안고 밤새 앓아야 하는 신세니.
한 번은 제리가 부정출발하는 바람에 정확히
생쥐가 제리에 코를 때린 적이 있었다.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는 것 같더니
제리는 생쥐를 앞발로 잡고 뒷 발로 팡팡 차기 시작했다.
이건 뭐지?
화가 난 모양이었다. 그래서 사냥감을 잡아 숨을 끊어 놓을 때 하는
뒷 발 팡팡을 보여준 것이리라.
나는 조금 놀랐지만, 이후 놀이는 중단이었다.
성질이 났는지 아들 방 창가로 확 달아나 버리는 것이다.
보통 놀이의 끝은 조금 먹는 것인데
그것도 포기할 만큼 화가 난 제리는 그렇게 긴 낮잠을 잤다.
제리야 파란 하늘과 초록색 풀밭을 하염없이 달리는 꿈을 꾸고 화 풀기
바란다.
미안해 제리야 던지는 실력이 동체시력을 이겨먹는 날이 온 건가 봐.
골골 송을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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