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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고양이 Oct 30. 2024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고양이

드라이기 소리는 정말 싫어

더 춥기 전에 완수해야 할 미션이 있다.

그건 일 년에 한 번하는 제리 목욕날이 도래했다는 것이다. 하하하하

사실 단모종 고양이는 특별히 목욕을 시킬 필요가 없다고 한다.


고양이 침에는 살균작용을 하는 성분이 있기에 그루밍만으로도 깔끔하게 몸을 관리할 수 있다. 그루밍하기에 어려운

노령견이나 아픈 경우가 아니라면 특별히 목욕을 시켜

스트레스를 줄 필요는 없다고 한다.


근데 요즘처럼 미세먼지가 많고

갑자기 먼지가 많은 곳에 들어가거나 하는 고양이 성향 때문에 피치 못하게

목욕을 해야 하는 시점이 오고는 한다.

그래서 집냥이의 경우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목욕을 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기에

제리도 그렇게 돌이 된 기점에 한 번 목욕을 했었다.

이 얘기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슬픈 이야기다.

온 등에 가슴에 고양이 발톱 공격을 받았더랬다. 애기다 보니 발톱을 잘 감추지 못해서 난리를 폈고

요령이 없었기에 도망치려는 제리를 잡다 피를 보고야 말았다.

게다가 나갈래라는 한국말 패치된 울음을 내던 제리를 만났다. 정말 서글프고 구슬픈 울음이 아직도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등과 가슴에 쓰라림을 훈장처럼 갖게 된 나도

사실 많이 슬펐다.


첫 번째는 두 번째 목욕을 앞둔 기점에서 트라우마로 작용했다.

자꾸 미루기 시작했다.

남의 일이라도 되는 듯

아들과 딸은 제리에게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나는 꼬순내라고 주장하며 상대의 입을 막아보려 노력했다.

그렇게 버티다 결국 디데이를 맞았다.

갑자기 날이 추워져서 올해는 목욕은 안 되겠는데

하며 넘기려 했는데

이런 갑자기 날이 풀린 것이다.

거기다 옷장 정리하는 집사를 옆에서 지켜보는 척하더니

옷장에 돌입해

아주 신이 난 녀석을 보자

옷장에 제리 털도 문제지만(남편 옷장이라 다행) 제리 털에 먼지가 걱정이었다.

그 후 부쩍 과하게 그루밍하기 시작했다.


더 미룰 수는 없다. 단단히 맘을 먹고

개수대에 따뜻한 물을 받아두고 수건을 준비했다.

버려도 되는 옷을 입고

놀이하는 줄 아는 순진한 제리를

체포해  화장실로 연행했다


우선 가슴에 끌어 안아 뒷발을 개수대에 담가 물에 익숙하게 만들고

샤워기를 안 쓴 것은 첫 목욕의 문제점을 파악해서였다.

욕조는 물 때문에 많이 미끄러워 고양이가 패닉에 빠졌다.

그래서 개수대를 이용하게 된 것이다.

고양이는 얼굴을 씻으면 안 된다. 눈에 물이 닿으면 눈병에 잘 걸린다. 여차 씻다가 샴푸라도 들어가면 큰일이다.

가슴에 안고 물을 천천히 묻히는 방식으로 목욕을 시작했다.

의외로 울지도 않고 물도 서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순조로웠는데

샴푸가 짜지지 않는 거다. 펌프가 고장이 난 모양이었다.

하늘은 내 편이 아니었다.

너무 당황했다. 한 손으로 제리를 안고 있기에 사용할 손은 하나

한 손으로 해결해야 할 것은 안 열리는 펌프 뚜껑을 열고 직접 샴푸를 꺼내야 한다는

어찌어찌하다 보니 겨우 열렸고 짧은 시간에 난관을 넘었다.

입술마르다 못해 거북 등처럼 갈라지고 있었다. 피맛이 난 것도 같다.


다행히 거품에도 별 반응 없이 잘 적응했다.

물보다 오히려 수월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개수대의 물이 거품화되었기에

물을 빼야 하는데

청각이 민감한 제리가 잘 버틸지 걱정이었다.


고양이는 강아지보다도 청각이 뛰어나다. 그러기에

청각 민감도가 높다. 특히 높은 소리에 민감한데

비닐의 사각거리는 소리, 사이렌, 폭죽 소리 등을 엄청 싫어한다.

사람이 듣지 못하는

소리까지 듣기에 배수구 물소리, 전자기기 작동 소리, 형광등 소리, 콘센트의 전류가 흐르는 소리 등

많은 소리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기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모든 감각은 적당히 둔감해야 살기 편하다.

그럼에도 고양이의 귀가 예민한 것은 적의 접근을 알기 위한 생존반응인 것이다.


물이 빠지는 소리에 반응할 것이라 예상 가능했다. 그래서 좀 더 세게 제리를 안고

물을 뺐다. 조금 버둥버둥 댔다.

신기한 것은 제리가 그 와중에도 발톱을 감추고 있어 주었기에

피를 보지 않고 잘 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을 다시 틀었고 이내 버둥버둥 댔지만 잘 헹구고 수건 드라이를

할 수 있었다.


"아구 착해 우리 제리. 목욕도 잘하네. 아구 이뻐."


칭찬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더 거대한 산이 남아 있었다. 고양이 목욕은 산 넘어 산이다.

다음 산은 드라이기였다.

날이 조금 풀렸다고 해도 가을이기에

젖은 털을 타월 드라이만으로는 부족하다.


드라이기는 전자제품인 데다가 소리가 엄청나니

고양이에게는 이보다 더 무서운 물건은 없다.

드라이기를 켜자

화장실 문쪽으로 달아났다가 욕조 안으로 달아났다가 개수대 밑에 숨어 웅크리고

 "나아가으 알래" 울기 이 모든 순서를 계속 반복하며

난리를 피기 시작했다.


빠른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수건으로 말릴 대로 말리고

무서운 공간에서 해방시켜 주자."

큰 극세사 담요로 제리를

감싸서 가슴에 안고 제발 극세사가 수분을 많이 가져가 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집에 모든 창문을 닫아 따뜻하게 해 주었다.

수분이 남은 상태라 제리가 반쪽이 되었다.

안정이 우선이기에 제리를 이불에 넣어두고

난장판이 된 화장실을 정리했다.

갑자기 울컥했다.

화장실 청소가 싫어서가 아니라 미안한 맘이 컸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화장실 청소가 좀 싫어서도 있었다.

엉망진창이었다. 젖은 옷을 벗지도 못하고 정리하는 데 지쳐버렸다.


그건 꼬순내라고 이 인간들아.

복수할 거야. 두고 보자. 내 오늘의 원수는 꼭 갚으리라.


어딘가 한 맺힌 제리의 원망이 들리는 듯했다.


소파에 뻗어 있는데

제리가 다가왔다.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아직 털이 다 마르지 않았지만

밥을 다 받아먹고는 휑 들어가 버렸다.


지금 삐져서 간 건가? 방에 가보니 이불에 누워 자리를 잡고 잘 모양이었다.

제리하고 불렀는데 한쪽 귀를 쫑긋  다시 남은 한쪽 귀가 쫑긋하더니

반응이 없다. 설마, 아니겠지.

다시 제리하고 불렀는데 한쪽 귀만 쫑긋.

등을 보인채 무시하고 있었다.

너 지금 한쪽 귀로 듣고 한쪽 뒤로 흘린 거야?! 제리 이 녀석.

이거 다 널 위한 거였다고!

난 만신창이가 된 몸을 끌고 침울하게 방을 나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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