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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숙집 고양이 Nov 06. 2024

고양이의 사회생활

난 불안할 때 울곤 해.

요즘 고양이랑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뭐 그럭저럭 지내요.

혹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없나요?

문 열고 지내는 건 너무 가혹하다고 말하고 싶네요.

제가 고3이고 수능이 10일 정도 남았잖아요.

네 그러시군요. 전혀 몰랐네요. 수험생이셨군요. 치고는 너무 긴장감이 없네요.

아 씨 나 인터뷰 안 해.

반말하심 안 돼요. 지금은 인터뷰 중이거든요. 존중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요?

늦은 시간까지 스카에서 공부하고 오잖아요. 그러면 좀 쉬다 자야 하는데

방문 앞에서 너무 우는 거예요. 다음날까지 피곤하다고요. 그게 젤 문제죠.

무시하면 된다고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요. 원래 고양이는 불안을

울면서 해소하는 거라 그대로 두면 불안을 해소하고 밤 시간을 활용한다고

말씀드렸음에도 아직도 휘둘리고 있다니 답답하네요.

알았어요. 이제부턴 철저하게 무시하고 자도록 하겠습니다.

또.

(눈으로 욕하는 리포터를 보고 주눅 든다)


아니오. 이제 나가봐요.


(19세 수능준비생이라 주장하는 남학생의 인터뷰)

밤에 지속적으로 집사를 깨웠던 제리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후 제리가 집사를 깨우는 것보다는 혼자 남겨진 불안에

울었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은 배워야 한다.


그럼 집사를 깨울 때와 스스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우는 울음이 어떻게 다른가?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 고양이의 사회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고양이가 무슨 사회생활이냐고 황당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과 살고 있는 고양이는 타인들과 삶을 공유하며 살기에

사회생활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다시 돌아가 스스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우는 울음은

낮고 다소 허스키한 울음이다.

강아지들의 하울링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밤에 달을 향해 마당개들이 우는 것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아오오오

굉장히 서럽게 운다. 늑대의 하울링이 영화에 자주 노출되기에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소리와 유사한 울음을 고양이도 낸다. 아오 아유우 이렇게 운다.

이것은 집사를 부를 때 내는 하이톤의 야옹과 다른 좀 낮고 거친 소리다.

그렇다면 집사를 향해 내는 하이톤의 야옹은 이전에 언급했다시피

사람에게만 한정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고양이는 늦은 밤 혼자 남겨지거나 집사가 외출했을 때 외롭고 불안한

심경을 해소하기 위해 울기 시작한다.

종종 집사는 이 울음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데 이 과정은

고양이가 그 상황에서 안정을 찾기 위한 수단으로 울음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행동임을 알 수 있다.

만일 울 때 일어나 반응을 한다면

스스로 불안을 가라앉히는 것보다 집사를 깨우는 손쉬운 방식을 선택할 수 있기에

고양이와의 동거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집사는 고양이 스스로 그 상황을 해소하는 방식에 익숙해져야 한다.

철저하게 모른 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이 쉽지 이것은 상당한 인내심을 요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 과정을 통해 더 나은 육묘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니.

눈 딱 감고 자는 척해야 한다.


"엄마 제리가 나 그리워했으면 좋겠는데."

딸애는 자기가 수련회에 가는 2박 3일간 제리가 자신을 그리워해 주길 바랐다.

참 쉽지 않은 미션이다. 제리의 상황을 이틀간 사진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하고는

용평으로 떠났다.

내심 불안했다. 제리가 딸애 방을 좋아하긴 해도 딸애를 좋아하는지

하면 의문이 붙는 것이 사실이다.

싫다는 제리를 안아서 뽀뽀세례를 퍼붓기에

제리는 질색을 하고 도망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집 식구 중 유일하게 제리의 마중을 못 받기도 하고 말이다.

심지어 남편을 마중하는 제리인데,

발냄새도 맡아주고 머리 쿵도 가끔 해준다는 것.

은근 사이가 좋다는 쳇.

"엄마도 나 막 보고 싶어 우울했으면 좋겠다."

거기다 우울증 이겨내고 있는 엄마에게 저주까지 퍼붓고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발걸음 가볍게 그녀는 떠났다.

첫날 별 일 없이 제리는 딸 방에서 잤는데

신기하게도 딸이 없으니 그 방에서 낮에도 저녁에도 잤다.

게다가 다 침대 중앙에서 떡하니 제 방인양 잤다.

딸을 그리워 하기는커녕 '이제 이 방은 제 껍니다.' 하는 당돌한 태도였다.


둘째 날 별 일 없이 딸 방에서 잤다. 이제 아주 제 방처럼 사지를 뻗어서 여유롭게 주무신다.

이 방 주인이 오지 않을 것을 알기라도 한 듯하다.

너무 아무렇지도 않아 섭섭해할 딸 생각에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괜히 "제리, 누나 어디 갔는지 알아?"  이런 식으로 딸애의 존재를 제리 기억의 심연에서 끌어올려보려

애썼지만, 놀이에 집중할 뿐 별 반응이 없었다.

4시면 딸이 돌아올 것이다.

에고 에피소드를 지어내야 하나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딸 방에서 허스키 보이스에 울음이 여러 차례 들렸다.


아옼 아오옼 아 오옼


제리였다. 책장 위에서 자던 제리는 딸 책상을 밟고 내려와서는

방을 몇 차례 돌면서 울어댔다.


"이 방 주인 안 돌아왔어.  설마 안 돌아오는 거 아니지. 가출한 거야. 그러게 유튜브 보는 거 작작 혼내라 했잖아."


울음이 멈추자 제리하고 불렀더니 다시 아주 하이톤으로 대답하면서 나온다.

이 녀석 사회생활 제법 그럴듯하게 하는데. 완전 다른 고양이처럼 대답하며 나온다.

제리야 많이 불안했던 거야. 그 누나 돌아올 거야. 멀리 갈 위인도 못돼.

또 돌아오면 붙들려서 뽀뽀세례 할지도 몰라. 그래도 보고 싶지.

나도 불안하면 가끔 제리 따라 울어봐야겠다.

아니면 크게 욕이라도 한바탕 해봐야겠다.

혹시 불안이 해소될지도 모르는 것 아니겠나.


이 씨 발라먹을 세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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