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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아 Nov 27. 2022

존재가 가져다주는 힘

보였다가, 안보였다가

매주 수요일 오후 전공수업이 하나 있는데, 학생들도 그다지 많지 않은 이 수업은 4학년들의 전공수업이다. 4학년 졸업반으로써 푸석해진 우리들 얼굴에 1학년만큼의 열정과 설렘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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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겐  “3초 스캔”이라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사람의 외형을 파악하는 데 있어 3초면 충분했다. 레이저 같은 눈으로 스캔을 마치면 한 번 본 사람일지라도 잘 잊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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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 26분에서 28분 사이.

수업은 1시 30분에 시작된다.

4학년에게 지각은 더 이상의 협박 조건이 성립되지 않았다. 또한, 4층까지 계단을 올라 괜히 숨을 헐떡이고 싶지 않았기에 자동으로 엘리베이터 쪽으로 몸을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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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정적 속 어디선가 익숙한 사람이 걸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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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뿔테 안경에 큰 키, 컨버스 신발과 노스페이스 백팩. 가장 눈에 들어왔던 건 약간의 기장감이 있던, 보드라운 뒷머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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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같은 수업을 듣는 사람이었다. 4학년이 되어서 처음 본 그는 복학생이 분명할 터. 나보다 나이가 많을 것이라는 건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중저음 목소리로 유창하게 중국어를 읽는 거 보니 공부도 잘하는 그였다. 나름 중국어 부심이 있는 나는 그에게 지지 않기 위해 쓸데없는 승부욕도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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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수요일, 그다음 주 수요일.

오후 1시 26분에서 28분 사이, 그와 만나는 시간.

사람들로 붐비는 엘리베이터 속 내 시선에 들어오는 사람은 오로지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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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주. 즉 6번의 엘리베이터 만남을 끝으로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려 닫히는 순간까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항상 수요일, 이 시간에 보던 그가 내 시야에서 사라지니 “오늘 아픈가?”, “지각하려나”, “아님 먼저 강의실로 들어갔나?” 머릿속의 수만 개의 물음표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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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들어가 보니  익숙한 그의 뒤통수가 보였고, 늘 나와 함께 들어가던 강의실에 먼저 앉아있으니 왠지 모를 안도와 서운한 감정이 한데 뒤엉켰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와 나 사이에서 대화 한 번이 없었고 그저 아는 거라곤 이름, 목소리, 생김새뿐이라는 것이었다. (아, 코시국에 마스크만 쓰고 다니는 요즘 그의 코와 입은 나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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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의 아쉬움과 서운함이 무색하게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다. 존재만으로 안도감이 드는 나였다. 심장의 떨림이 반가움의 가슴 콩닥 임인 지, 좋아하는 마음의 두근거림인지 나조차 헷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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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있는 지금, 앞으로 그를 마주칠 일도 대화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는 그저 내가 만나는 타인 중 한 명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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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매주 보는 이 사람의 존재감은 내가 수요일을 기다리는 이유가 되었다. 보면 안도감이 들고, 보이지 않으면 걱정부터 시작되니 존재가 가져다주는 영향력은 내 삶을 쥐고 흔들 정도로 강렬했다. 책상 위 늘 보이던 가위는 항상 쓰려면 보이지 않고, 평소 시간도 잘 보지 않는 손목시계지만, 하루 안 차면 허전하듯. 사물과 사람, 어쩌면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가치와 힘이 있었으며 존재의 근거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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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그와 사랑에 빠질 계획은 없었지만, 덕분에 지루했던 수업시간에 조금의 설렘을 가져다었던 그의 존재. 졸업 후 그의 모습은 완전히 내 시야에서 사라지겠지만, 글로 남겨봄으로써 그와의 시간을 가두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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