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접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불편이 분노에 이르기라도 하면 ‘사신(使臣)’에서 ‘사신(死神)’으로
흑화 했다.
최대한 그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는 일 외엔 방도가 없었고, 불시에 마주치더라도 대비할 수 있게
약국을 전전하며 만전을 기했다.
예기치 않게 옷깃이라도 스치는 날이면
심기를 건드린 벌로 일주일간 근신 처분이 내려졌다.
고로나 씨가 활개를 치고 곳곳을 누비며 다니자, 재택근무가 늘고 휴직자 및 퇴사자도 증가하는 등, 사회 전반적으로 경제활동이 크게 위축되었다. 하지만, 기회는 늘 생각지 않게 온다더니, 오히려 그 틈에 철옹성 같던 사회로의 재입성이 내게 허락됐다. 초심자의 마음에 열정 한 스푼, 두 스푼, 한 대접을 더해 서류를 준비하고, 과제를 제출하며, 면접에 임했다. 매 순간 진심과 최선을 다한 결과, 합격이라는 보상을 받을 수 있었지만, 막연히 꿈으로만 만났던 바람이 실제가 되면서, 현실적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집안에 사회 활동을 하는 인원이 두 명이 되면서 감염에 대한 걱정도 두 배가 되었고, 축배보다는 여러 상황에 맞는 대안을 우선 찾아야 했다.
1. 자녀가 감염되었을 경우 :
부모 중 1인이 간호.
2. 부부 중 1인이 감염되었을 경우 :
감염 배우자는 화장실이 딸린 안방에서 철저히 격리.
3. 자녀를 제외한 부부만 동시에 감염되었을 경우 : ...?
3번이 문제였다. 마스크를 쓰고 비글 자매를 챙긴다 해도 전염될 게 뻔했고, 호흡기가 약한 비글자매에게 코로나가 어느 정도로 악영향을 미칠지 알 수가 없었다.
딱히 머리를 굴려도 이렇다 할 해답은 떠오르지 않았고, 결국 염치없지만...
또다시 비빌 언덕인 언니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우리가 감염되면... 애들 밥만이라도 좀 갖다 줄 수 있어?”
“우리 집에 아예 데리고 가서 있는 게 낫겠네.”
밥만 문 앞에 갖다 줘도 감지덕지할 상황에 천군만마를 얻은 듯했다.
언니는 내가 엄마라는 무게를 견디지 못해 넘어질 때마다 일으켜 주는 존재였다.
비글 자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을 들락거릴 때, 다이어터 내 인생 처음으로 타인에게 ‘살 좀 쪄’라는 말까지 듣기에 이르렀고, 잃은 식욕과 잊은 입맛은 쉬이 회복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언니가 제일 많이 한 말은, “밥 먹자”였다.
종종 “술 먹자”로 변질되기도 했지만, 아무튼 언니의 ‘밥 먹자’는 말은 묘한 힘이 있었다. 그때마다, 마음이 놓여서인지 생의 마지막 식사인 듯 집중하며 먹을 수 있었고, 때문에 언니는 항상 본인의 상황보다 나의 한 끼에 더 집중했다.
“뭐 먹을래?”
“글쎄.. 애들 병원 건물에 감자탕집 있는데 그거 먹을까? 멀리 가기도 힘들고...”
“음... 그래.”
다음날, 언니는 대장내시경 검사가 예약되어 있었음에도 병간호에 지친 날 위해 군말 없이 우거지 감자탕을 먹었다. 들깨를 아낌없이 쏟아부은, 후한 사장님의 인심 덕에 고소함은 극강으로 치달았고, 입맛이 돌던 나는 볶음밥까지 추가 주문을 했다.
든든한 밥심으로 비글 자매를 돌볼 힘이 났던 나와는 달리, 언니는 그날 저녁 2리터의 물과 약을 먹은 것도 모자라 검사 당일 의사의 꾸지람과 함께 우거지와 들깨를 씻어낼 추가 약과 1리터의 물을 다시 마셔야 했다.
드물게 내가 먼저 ‘밥 먹자’는 이야길 건넨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언니는 뒷일은 제쳐두고 일단 '오케이'부터 외쳤다. 빨간 양념, 칼칼한 후추향의 매콤하면서도 자극적인 제육볶음을 먹으면 입맛이 살아날 것 같던 그날.. 한 끼를 먹더라도 맛있게 먹고자 동네에서 잘하기로 유명한 식당을 방문했고, 언니는 생각보다 고기가 질기다며, 턱관절이 빠질세라 질겅질겅 무아지경 씹어대기 시작했다.
입에 새빨간 양념을 그득 묻히고.
“그런데.. 그거... 양념 아니고...
피.. 아냐???”
신경치료를 하고 온 언니는 마취가 덜 풀린 상태에서 돼지고기인지, 입술인지도 모른 채 한참 동안 저작운동을 했고, 결국 입술이 터져 피가 질질 흐르면서도 입 주변 마비된 감각 탓에 느끼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래서 바로 먹지 말라고 한 거구나.’며 웃는 언니가 그때는 미련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 지금에 와서야 언니의 ‘밥’에는 식사 이상의 것이 있음을 알게 됐다.
마흔을 앞두고 일을 하고 싶다는 동생의 바람에 이번에는 조카의 밥을 책임지겠다며 언니가 발 벗고 나섰다. 나중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얌체처럼 언니라는 언덕을 무자비하게 비비는 동생인 걸 알면서도 언제나 그랬듯 대가 없이 내 편이 되어주었다.
엄마가 일을 한다는 것은 비상시 엄마를 대신할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거나,
그게 아니면 어떠한 공격에도 살아남을 정신력과 체력이 갖춰져야 함을 의미한다.
여건상 매번 조카의 엄마가 되어줄 수는 없겠지만, 내가 TKO패를 당해도 입에 밥숟가락을 밀어 넣어줄 존재가 있음에 출근길이 마냥 무겁지만은 않았다.
'사회'라는 전장에 나가 '연봉'이라는 성의 꼭대기에 승기를 꽂으면, 목구멍을 넘어 단전까지 뜨끈해지는 최고의 고봉밥을 그녀에게 선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