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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a Kim Dec 27. 2023

생일엔 누가 선물을 받아야 하나요?

엄마만 선물을 다 받꼬, 엄마는 똥이야, 방구야!!! 나빠!!!

12월에는 가족 행사가 많다.

우선, 첫째 생일 16일, 내 생일 22일, 크리스마스 25일.

네 식구의 절반인 둘의 생일이 12월에 몰려있고 거기에 크리스마스까지 있으니, 어린이날이 있는 5월보다 12월이 더 대우를 받은 달이다.      


첫째는 11월부터 자기 생일 며칠 전이라고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

휴대폰의 시계가, 손목의 애플와치가 12시 16분만 나타내도 “엄마, 엄마, 내 생일이야. 봐봐.”하길 수차례. 아주 집요하다. 5살 생일에 약속했던 자전거를 아직까지 사주지 않았으니, 이번 생일엔 그 선물까지 더해서 두 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얘길 여러 차례 듣다 보니, 둘째도 덩달아 거들기 시작한다.

둘째는 2020년 2월 15일에 태어나 올해로 4살이다.

본인이 태어난 2020년을 말하지 못해 한 손으로 리듬을 타면서 또박또박 얘길 한다.


"엄마, 이.공.이공. 이월십오일. 나 왜 선물 안 줬어?"  

“?????”

“이.공.이.공. 이월십오일. 나 왜 선물 안 줬어?”

“????? 라희야, 주원이가 무슨 말하는 거야?”

동생과 5살 차이가 나는 누나에게 통역을 요청했다.


“그러니까, 주원이가 2020년 2월 15일에 태어났잖아. 그날 왜 본인에게 선물을 안 줬냐고 말하는 거야.”

“?????”     

그러니까, 지금 나랑 '41살' 차이가 나는 녀석이 자신이 태어난 날,

왜 본인에게 선물을 주지 않았으냐고 얘길 하는 건가?

순간적으로 막걸리를 서너 잔은 연거푸 마신 것처럼 머리가 핑 돌았다.


주원이가 태어난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토요일이었고, 정기검진을 받으러 산부인과를 찾았다. 검진을 시작하마 마자 의사 선생님께서 당황해하시면서 지금 당장 유도분만을 해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하셨다. 양수가 이미 터졌는데 그걸 모르고 있었냐고 하신다.  


나는 지난밤에 뭔가가 비치는 것이 소변이라고만 생각을 했다.

실제로 막달이 가까워 오면서 소변을 참지 못해서 곤란했던 적이 몇 번 있었기에 나는 아예 어르신들이 쓰는 요실금 팬티를 입고 있었다. 그런데 그건 소변이 아니라, 양수였던 것이다. 예정일보다 한 달 하고도 보름이나 남았고, 다음 주 월요일에 나의 출산휴가를 대체할 분이 인수인계를 받으러 출근을 하기로 했는데, 어떡하지.  

   

신랑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 애 낳아야 한데요. 노트북 좀 챙겨 오세요.”

“뭐? 노트북?”

“네, 양수가 터져서 유도분만을 해야 한데요. 노트북 좀 챙겨 오세요.”

“애를 낳는데 왜 노트북을 챙겨가?”

“얘기할 시간이 없어요. 빨리요.”     


유도분만을 하기 위해 바로 병실을 잡고 대기를 했다.

다행히 집 근처 산부인과라 신랑이 노트북을 챙겨서 병원으로 달려오는 데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진통이 심하게 밀려오기 전에 노트북을 열어 회사로 이메일을 보냈다.

'지금 애를 낳아야 하니, 오늘부터 출산휴가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다음 주 월요일에 잠깐 출근해 인수인계를 하겠습니다'라는 내용으로 급하게 몇 줄을 썼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지금 이.공.이,공을 열심히 외치는 둘째다.     


“이공이공. 이월십오일 왜 나는 선물 안 줬어?”

“주원아, 누가 주원이를 낳았지?”

“엄마가”

“그럼, 주원이를 낳느라 고생한 사람이 누구지?”

“다솜이?” 

(다솜이는 주원이 어린이집 친구로 같은 아파트 9층에 산다.)


“엄마지? 엄마가 고생했지?”

“응”

“그럼, 힘들게 주원이를 낳은 엄마가 선물을 받아야겠지?”

입이 삐쭉삐쭉, 울음보가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주원아, 누나는 누가 낳았지?”

“주원이가”

“아니야, 엄마가 낳았지? 엄마가 고생했지?”

“응.”

“그럼, 엄마가 또 선물을 받아야겠지?”

“엄마만 선물을 다 받꼬, 엄마는 똥이야, 방구야!!! 나빠!!!”     


결국, 주원이는 집이 떠나가도록 대성통곡을 했다.

가족들이 날 쳐다봤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뭘 그렇게까지라는 표정이었다.     








당연히 이해할 수 없겠지.

양수가 터진 줄도 모르고, 요실금 팬티를 꺼내 입은 것도 나요.

유도분만 전에 회사에 출산 사실을 급하게 알려야 했던 사람도 나요.

토요일에 애 낳고, 월요일에 잠시 출근해 인수인계를 해야 했던 사람도 나였으니 말이다.

 

이래도 내가 선물 받을 자격이 없어? 어?

아무도 나에게 자격 없다고 하지 않았는데, 왜 이러지?

셋은 TV앞으로 사라졌고, 나만 남았다.

고요한 외침이다.

외, 외, 외롭다.



P.S. 우리 엄마들은 누구나 임신과 출산에 대한 얘깃거리가 최소 몇 가지씩은 있잖아요.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엄마들도 그러셨겠죠? 너희들이 태어난 날 엄마가 가장 고생을 했으니, 엄마가 선물을 받아야 한다고 얘길 하면서 저 역시도 우리 엄마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제 생일 출근길에는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낳아주시고, 길러주셔서 감사드린다고 X 버터 50개를 먹은 것처럼 애교를 부려봤습니다.


이 땅의 모든 엄마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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