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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a Kim Jan 03. 2024

누나는 9세야!!!

동생의 시청연령을 생각하는 누나

우리는 패밀리 침대에 네 식구가 잔다.

아빠, 첫째, 나, 둘째.. 이렇게 누워있지만...

실상은 아빠---------,  첫째나둘째 이런 모양새다.


깊은 잠을 자는 아빠와 쪽잠을 자는 엄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잘 잔다.

하지만, 그날은 두 아이들이 투닥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FT^*&()^&Hxvぬお)*%^&!@r5gdf"

“누나는 너 때문에 보고 싶은 TV도 못 봐.”

(어? 이게 무슨 말이지?)


“누나는 너 때문에 4세 이상은 못 본단 말이야? 누나는 9세야!!!”

“주원이는 4살이야.”

“알아, 지금 그 얘길 하는 게 아니잖아. 누나는 4세도 볼 수 있고, 7세도 볼 수 있고, 9세도 볼 수 있어. 그런데 너 때문에 4세밖에 못 봐. 4가 커, 9가 커?”

“칠!!”

“무슨 말이야? 사, 오, 육, 칠, 팔, 구. 구가 크지!!! 칠보다도 구가 커!!!”

“아니야, 칠이야, 칠.”

“무슨 소리야!!!!”


라희는 화가 단단히 났다.

얘기인즉, 자기는 4살인 동생을 위해서 TV도 All 이거나, 4라고 표시된 프로그램만 본다는 것이다.

다른 것도 보고 싶었지만, 그간 동생을 배려하느라 참고 보지 못했던 설움이 터져 나왔나 보다.


가만히 누워서 둘의 싸움을 듣던 나는 처음엔 주원이의 엉뚱한 대답에 웃음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그러다 동생의 나이까지 생각해서 TV를 본다는 라희의 말에 맘이 또 울컥해졌다.

라희가 어릴 때, TV에 적힌 숫자를 보여주며 나이에 맞게 보는 거라고 얘길 해 준 적은 있다.

하지만, 그걸 기억하고 동생의 시청연령까지 알아서 지켜주다니 예상치도 못한 일이었다.

     

다음날 물었다.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뭔데?”

“몰라. 그런데 다  4세가 넘어.”

“음, 엄마도 고민해 볼게.”    

 

라희는 꼭 보고 싶은 게 있다기보다는 모든 일에 동생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그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다. 누나잖아. 누나니까. 하는 어른들의  한마디를 당사자는 하루에 대여섯 번쯤을 들었을 테고 은연중에 본인이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다가온 것이라 짐작해 볼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민은 해결이 됐다.

너무 많은 채널이 있어서 혼란을 줄 수 있다면, 채널을 줄이자.

그래서, EBS만 보기로 했다.

단, EBS에서 나오는 프로그램은 뭐든 다 보는 것으로 합의(?)를 했다.

다행히 라희가 좋아하는 “세계테마여행”, “명의”가 모두 EBS에서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선택의 폭을 하나로 만들어 버리고, 그 안에 모든 채널을 볼 수 있게 하자 갈등이 없어졌다.

(시어머님과 돌봄 선생님께는 미리 양해를 구했야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럽다.)


은연중에 엄마의 역할까지 하느라 애쓰고 있는 라희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

1월 일정표를 꺼내본다.

기말감사,

Performance Evaluation,

세무조정,

굵직한 일정들이 있긴 하지만, 하루 휴가를 못 내랴.


라희는 숫자 2를 제일 좋아하니, 22일에 휴가를 내야겠다.

말없이 짠~하고 나타난 엄마를 보고, 어쩔 줄 몰라하며 몸을 베베꼬는 모습을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난다.

둘이 서점도 가고, 좋아하는 찜닭도 먹고, 꽃도 사고, 아이브 포토카드도 사고,

기억에 남은 둘만의 데이트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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