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는 기쁨의 도둑이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하나의 공식을 배웠다.
현실은 불완전하고 고통스럽다. 이상은 완벽하고 행복하다.
동화 속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난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온갖 시련을 견딘 끝에 완벽한 사랑을 찾는다. 종교는 현실의 고통을 참으면 내세에서 영원한 행복을 얻는다고 가르친다.
이런 이야기들은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지금은 힘들어도 괜찮아. 언젠가는 모든 게 완벽해질 거야.”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의 세계처럼, 어딘가 완벽한 세상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그 그림자 속에서 산다고 여긴다. 이 생각이 머릿속 깊이 박혀 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한다.
내 월급과 친구의 월급을, 내 연인과 드라마 속 남자주인공을, 내 외모와 인플루언서의 외모를, 내 인생과 성공한 사람들의 인생을 비교한다. 그리고 매번 부족함을 느낀다.
왜냐하면 우리가 비교하는 대상은 현실이 아니라 이상이기 때문이다.
SNS에 올라오는 사진은 수십 장 중 가장 잘 나온 한 장이다. 성공담은 실패의 과정은 빠진 채 결과만 포장되어 있다.
“비교는 기쁨의 도둑이다.”
정확한 말이다. 우리는 비교 때문에 지금 가진 것의 가치를 잃는다.
현대인을 나타내는 가장 정확한 단어는 ‘바쁨’이다. 학생 때도, 20대에도, 지금도 우리는 늘 바쁘다.
앞으로도 아마 바쁠 것이다.
“왜 이렇게 바쁘게 살아야 하지?” 이 질문을 던지면 돌아오는 답은 뻔하다.
“그럼 돈은 누가 벌어?”
“나중에 이렇게 모아서 편하게 살려고.”
“지금 열심히 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아.”
모든 대답은 미래를 향한다.
지금은 얼마든지 참는다. ‘언젠가’를 위해 지금을 견딘다.
지금의 고생은 미래 행복을 위한 투자라고 믿는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완벽한 세상은 정말 존재할까?
존재한다고 해도 지금 우리가 알 수 있을까?
그 세상을 알 수 없다면, 지금 내 앞에 펼쳐진 이 현실에 집중하는 게 맞지 않을까?
나는 바쁘게 미래를 준비하느라 지금을 놓치는 사람들을 본다.
은퇴 후 여유로운 삶을 꿈꾸며 평생 일만 하다가, 막상 은퇴하니 건강도, 취미도, 함께할 사람도 사라진 경우들. “언젠가”를 위해 “지금”을 포기한 대가였다.
모든 삶에는 빛과 그림자가 함께 존재한다. 완벽한 삶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나뿐이다. 이상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여기가 우리가 살아갈 유일한 세상이다.
슬프지만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미래의 완벽한 순간을 기다리며 현재를 낭비하지 말자.
‘나중을 위해’가 아니라 ‘지금을 위해’ 살자.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가끔 힘들어도 괜찮다.
그게 진짜 삶이다.
요즘 나는 비교를 멈추려 한다.
대신 감사할 것들을 찾는다.
건강한 몸, 따뜻한 집, 맛있는 밥, 사랑하는 사람들.
당연했던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는다.
나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보다는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일에 집중한다.
책 한 권 읽기, 운동하기, 가족에게 안부 전화하기.
거창하지 않지만, 이런 것들이 모여 내 삶이 된다.
어딘가에 완벽한 세상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여기, 이 순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