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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패맨 Jan 16. 2024

서른 즈음에

청춘

 청춘

 어린 시절 내가 꿈꾸던 20대 후반은 집과 가족이 있는 모습이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 모습이 조금씩 늦춰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직장을 다니며 가족을 이룰 준비가 되어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막상 4년제 대학에 들어와, 수업을 듣고, 군대를 다녀오고, 휴학을 1년 하고, 졸업을 하고 나니 이미 나이는 20대 후반이었다. 내가 뭔가 이루고 준비가 되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실제로는 이제 무언가를 시작해야 할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 뒤로 뭔가 쉴 틈 없이 움직이며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마침내 나는 20대의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순간에 봉착했다. 내가 10대의 마지막 순간에는 성인이 될 자유와 즐거움을 꿈꾸며 기대에 벅차 20대를 맞이했던 것 같은데, 지금 20대의 마지막 순간에는 파릇파릇한 젊음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더 많은 책임과 성숙이 드리워질 거란 생각에 부담으로 30대를 맞이할 것 같다.

 새로움과 불편함이 공존했던 대학시절, 즐거움과 괴로움이 공존하던 군시절, 처음 보는 세상에 모든 순간이 들뜨고 신났던 여행시절. 지나고 보니 바쁘게만 살았던 이 모든 순간들이 청춘이었다. 물론 100세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30, 40대에도 청춘이라는 말을 듣지만, 국어사전이 내리는 청춘의 정의는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런 시절을 이르는 말'이다.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내 인생의 가장 젊은 시절이 지나간다는 사실이 아쉴 울 따름이다.




서른 즈음에

 

사진 출처 : 브런치

 김광석의 노래는 대한민국 남자들의 인생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이등병의 편지, 사랑했지만,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서른 즈음에,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등, 남자라면 거의 모두가 공감할 법한 감정을 담아낸 노래들이 많다. 나 역시 군대를 가기 전에 이등병의 편지를 들었고, 사랑 때문에 힘들었을 때 사랑했지만을 불렀다. 그리고 이제는 서른 즈음에를 부를 시간이 왔다. '내가 보낸 것도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니지만, 머물러 있을 것만 같았던 사람과 사랑과 청춘은 나와 매일매일을 이별하며 멀어져만 가고 있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어가기 시작한다. 매 순간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생명체에게 청춘의 짧은 시간은 그저 스치듯이 지나치는 찰나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막상 당시에는 청춘의 시간이 소중하단 걸 깨닫기 힘들고,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찰나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청소년시절에 어린 시절이 부럽고, 어른시절에 청소년시절에 부러운 것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항상 과거가 소중했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 모두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태풍의 눈의 한 가운데 있는 당사자는 그 사실을 눈치채기가 어렵다. 이것은 바둑을 제 3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사람이 막상 바둑을 두고 있는 사람들보다 더 게임판을 잘 읽고 훈수를 잘 두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 모두 매순간순간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것이 피부로 와닿을 정도의 충격은 아니기에 그냥저냥 잊고 살아갈 뿐이다. 사람이 언제쯤이면 매순간순간의 소중함을 느끼며 살아가게 될까. 예순즈음에? 일흔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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