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영화 [바람의 파이터], [명량], [최종병기 활]

by 연패맨
두려움을 받아들여라


최배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바람의 파이터]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나는 싸우는 것이 두렵다. 맞는 것이 두렵고 지는 것이 두렵다. 싸우다가 죽는 것보다 불구나 폐인으로 살아남을까 봐 더욱 두렵다." 일평생 실전의 증명을 위한 싸움을 하며 살아온 진정한 싸움꾼 최배달도 싸우는 것이 두렵다는 말을 했다. 영화에 나온 대사라서 최배달이 진짜 이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그도 분명 수많은 싸움을 치를 때마다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실전의 싸움이든 대련이든 서로의 얼굴과 몸으로 진심 펀치를 날리고 맞는 것에 타고난 사람이 아니고서야 상당한 두려움이 따른다. 이 두려움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거나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곳에 들어가 보는 두려움과는 또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상대방과 1대 1일로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맞는 것이 두렵다. 날아오는 주먹을 얼굴에 정타로 맞았을 때 퍽 하며 턱이 들리고 잠깐 시야가 가려지면 당황스러움과 함께 띵한 고통이 찾아온다. 먹이 언제 어디서 날아왔는지 알지도 못한 채로 맞기 때문에 더욱 두렵다. 잘하는 사람이랑 스파링을 해보면 주먹이 날아오는 궤적은 물론 어느 타이밍에 들어오는지 그 잠깐의 일각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즉, 알지 못하기에 무고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싸움을 해야 하는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움 속에서 침착함과 여유로움을 유지해야 한다. 두려움을 참고 싸워내야 한다.

[바람의 파이터]에서는 위의 대사에 이어 이런 대사가 나온다. "그럼에도 나는 매번 새로운 강적을 찾아서 나선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두려움을 받아들여라 2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은 명량대첩을 치르기 전에 아들을 앉혀두고 이런 말을 한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 용기는 백배, 천배 큰 용기로 배가 되어 나타날 것이다." 영화 대사라서 그렇지 사람이 죽음의 공포를 눈앞에 두고 어떻게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가 있겠는가. 명량대첩이 벌어지고 수백 척의 왜선을 눈으로 확인한 장수들은 모두 배를 돌려 도망쳤다. 하지만 이순신이 탄 대장선 한 척만은 도망가지 않고 버텼으니, 이것이 바로 명량대첩의 시작이었다. 이순신은 그저 죽을 생각으로 왜선 수백 척과 부딪혔을 것이다. 그 유명한 대사(필사즉생 필생즉사)처럼 그는 정말 살고자 할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또한 장수들이 대장선의 흡사 자살행위를 보고 도와주러 올지 안 올지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수들은 이내 대장선을 도우러 출정했다. 이것이 그의 뜻대로 두려움이 용기로 바뀐 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대장선이 혼자서 저리 버텨내 싸우고 있으니 '이거 싸울만하겠다', '여기서 죽으나 항명으로 죽으나 거기서 거기겠구나' 싶어서 출정한 것이 아닐까 싶다.

결국 이순신은 스스로 죽음의 두려움을 받아들여 솔선수범함으로써 병사들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고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한 명의 희생이, 모두의 용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두려움을 직시하라


"두려움은 직시하면 그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영화 [최종병기 활]에 나온 대사다. 두려움을 직시하면 그뿐 이라니.. 두려움이 그렇게 쉽게 시해지는 것인가.. 두려움을 마주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두려움, 두려운 느낌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대상을 무서워하여 마음이 불안하다' 또는 '마음에 꺼리거나 염려스럽다'이다. 국 두려움을 극복해내려면 마음이 불안하지 않아야 하고 꺼려함이 없어야 한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공포의 대상 앞에서 불안해하지 않고 주저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 경험상 그런 방법은 없다. 부딪혀서 답을 보는 수밖에 없다. 딪혀보고 '어 이것 봐라 할 만하네?'라는 긍정적 해답이 나오던가, '와 이건 진짜 할 짓이 아니다.'라는 부정적 해답이 나오던가. 어쨌든 답은 나오게 되어있다. 그리고 장담컨대 90% 이상의 일이 해보기 전 두려웠던 감정과 다르게 '할만한데?'라는 긍정적 해답을 얻게 될 것이다. 왜냐, 우리의 뇌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것에 대해 엄청난 공포와 상상을 더하여 우리가 그것을 조심하고 피하도록 만들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로 용기를 내어 그것의 실체를 경험해보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해볼 만한 것이었음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두려움은 막상 직시해보면 해볼 만하다. 그렇기에 두려움은 직시하면 그뿐이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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