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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패맨 Oct 29. 2022

생활체육 복싱대회 후기 3

패배

-75kg 맞냐고..
출처 : 루리웹 / 사람과 고릴라 팔 근육 차이

 인정하긴 싫지만 이번 패배의 원인은 두려움이었다. 내가 미리 상대 선수를 보고 의식할 필요는 없었는데, 의도치 않게 보게 된 것이다. 구릿빛 피부에 나보다 조금 작은 키, 헬스를 얼마나 했는지 땅땅한 근육질 몸의 소유자였다. 특히 팔근육이 무슨 고릴라 같았는데, 처음에 나는 당연히 저 인간이 나처럼 -75kg 일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설마는 확신으로 바뀌어갔다. 그가 나를 의식하는 눈과 나와 비슷한 타이밍에 옷을 갈아입으며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관장님이 미리 상대 선수를 보고 왔는데 몸이 좋고 땅땅하다고 하시면서 그런 거 신경 쓰지 마라고 쫄 거 없다고 하셨다(근데 그냥 그런 말을 안 해주셨으면 덜 쫄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미 2번의 시합 경험이 있었기에 크게 떨리거나 두렵지는 않았는데, 뭔가 미리 기가 팍 꺾인 느낌이었다.

 관장님은 상대 선수가 분명 힘 좋은 훅 잡이일 테니 위아래 아래위 스트레이트와 페인팅, 카운터만을 사용해서 상대하라고 알려주셨다. 또한 링 넓으니 가까이 붙어서 하지 말고 치고 빠지며 스을 잘 살리라고 하셨다. 특히 저번 시합에서 내가 갈비뼈를 맞고 다쳤기 때문에 관장님은 내가 혹시나 부상을 입을까 신경 쓰고 계셨다. 1라운드는 무조건 체력 유지! 붙어서 배 맞고 다칠 것 같으면 수건을 던진다고 하셨다.




1라운드
출처 : 세계일보

 링 위로 올라갔다. 지난번 시합보다 결코 떨리지 않았다. 다만 어떤 묘한 긴장감이 주위를 감싸고 돌았다. '이건 스파링이다.. 체력 유지.. 링을 넓게..' 속으로 다시 한번 되인 뒤, 이노우에 나오야처럼 글러브로 가슴 양쪽을 두드리며 준비된 자세를 취했다. 공이 울리고 상대와 나는 링 가운데 움직이기 시작했다. 몇 번의 잽 공방이 오가고 상대가 내 잽 타이밍에 맞춰 라이트를 휘둘렀다. 펑. 머리가 크게 움직일 정도정타였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순식간에 내 리듬과 분위기를 빼앗긴 것을 느꼈다. 상대 선수의 체육관에서는 꽤나 많은 덩치들이 왔었는데 모두 목청이 한 따까리 하는 수준이었다. 내가 정타를 맞을 때마다 엄청난 환호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그에 덩달아 상대 선수 또한 괴성을 내지르며 나에게 도발적인 제스처를 취했다. 심판이 상대 선수를 향해 소리를 지르지 마라고 경고했다. 발에 말린 건 아니었으나 분위기 때문인지 내가 들어갈 때마다 상대의 라이트에 제법 걸렸고 맞고 뒤로 튕겨나는 일이 잦았다. 반면에 나는 이렇다 할 정타를 아직 먹이지 못했었다. 공이 울리고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왔다. 안 맞으려고 애쓰며 링을 넓게 쓴  탓인지 큰 체력저하나 부상은  없었다. 




2라운드
물론 이런 다운은 아니었다.

 체력이 남은 만큼 계속해서 스텝을 밟으며 페인팅을 몇 번 주다가 아래위 위아래를 썼다. 그러나 링이 넓은 것이 나에게만 유리한 것은 아니었다. 상대 또한 내가 공격이 들어때마다 넓은 링을 활용해 가볍게 뒤 빠졌다. 무엇보다 내가 위아래 아래위 스트레이트만 쓰다 보니(또 그것이 확실하게 빠르고 타격적이지 못해서인지) 상대 선수는 내 공격을 읽고 카운터를 제법 잘 날려댔다. 이번에도 나는 앞 발이 쑥 들어가지 않아 뒷손이 상대방에게 닿지 않는, 요상한 자세의 공격을 되풀이했다. 샌드백을 칠 때, 스파링을 할 때는 그렇게 잘 들어가던 앞발이 시합만 되면 쑥 안 들어가진다. 이번에는 분명했다.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맞는 게 두려기 때문이다. 반복적으로 읽히고 카운터를 맞다 보니 들어가면 또 맞지 않을까 하는 망설임과 불안함이 내 발의 확실한 전진을 막은 것이다. 당연하게도 앞손이 안 맞으니 뒷손은 당연히 맞을 리 없었고 나는 제대로 된 정타 한 번 제대로 먹이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코너에 몰린 나는 상대에게 정타를 한 방 허용해서 고개가 크게 들렸는데 심판은 곧바로 우리 둘을 때어놓고 나에게 다운을 선언했다. 딱히 아프지도 위협적이지도 않은 공격이었는데 심판이 나를 세워두고 카운트를 세는 걸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착잡했다. 공이 울리고 시합이 종료되었다. 주심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상대 선수의 승리를 선언했다.




아쉬움과 피지컬
출처 : 티스토리-msmen

 관장님이 나의 장점 및 내부상당할 수 있는 상황을 생각해서 지시내려주신 건 알겠지만(물론 그래서 이번에 다치지도 않았지만) 내 기술을 있는 그대로 다 못 보여줘 아쉬움이 남았다. 훅투 원어퍼 원투 왼훅 전부 다 사용하지 않았다. 오로지 잽과 카운터, 위아래 아래위였는데 이게 또 제대로 맞히지도 못했으니 나로선 그저 아쉬울 따름이었다. 이번을 포함 3번째 시합까지 하면서 느낀 점은 "덩치를 키워야겠다"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동체급 대비 내가 너무 얇상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75kg 다 보니 키도 얼추 나랑 다들 비슷한 데다가, 팔뚝이 내 1.5~2배는 되었고, 덩치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단순히 외관상의 심리적인 압도도 있었지만, 한방 한방이 힘에 있어 밀리는 수준이었다. 분명 내가 쫄아서 맞고 뒤로 튕겨 난 것도 있었지만 맞을 때마다 힘으로 뒤로 밀려나는 부분 확실히 느껴졌다. 유튜브에서 가끔 복싱선수들 영상을 보면 거의 95% 이상이 나랑 같은 75kg인데도 근육이 쫙쫙 갈라진 데다가 목도 굵고 덩치도 산만했다. 물론 선수여서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애초에 75kg는 그 정도 덩치가 기본값인 것 같다. 나는 기술이나 실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난 게 아니라서 기본값 정도는 되는 피지컬을 만들고 나서 다시 출전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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