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 stay young

7화. 머무는법

by 제난희


며칠이 흘렀다.

조용하고 잔잔하게.


딸아이와 사위는 출퇴근하며 아이들을 돌보느라 바쁘다.

영할아버지도 나름 돕는다고 돕지만, 과연 큰 도움이 될까 싶다.

그래도 어디 가서 남들에게 짐이 되는 양반은 아니다.


사위가 퇴근하면 저녁을 요리할 수 있도록,

할아버지는 아침과 점심을 마친 뒤 부엌을 깨끗이 정리해 둔다.

약간의 결벽증 덕에 어디를 가도 민폐가 된 적은 없다.

그릇은 평소보다 가지런히 제자리를 잡고,

식자재는 깨끗하게 손질되어 있다.


평소였다면 손녀들이 하교하자마자 배고프다고

싱크대 밑 과자 보관함을 뒤졌을 테지만,

할아버지가 온 이후로는 항상

‘할아버지표 삶은 고구마와 삶은 달걀’을 찾는다.


잘 삶은 고구마가 구운 고구마만큼 맛있어지는 순간이다.

노른자는 촉촉해 아이들이 천천히, 맛있게 먹는다.


아이들은 간식을 먹으며 말한다.

“할아버지, 달걀 껍질이 신기하게 잘 벗겨져요! 이거 보세요!”

할아버지는 그 말에 보람을 느낀다.

별것도 아닌 일에 웃을 수 있다.


“울 아빠가 삶으면 껍질이랑 달걀이랑 같이 벗겨져요. 먹을 게 없어요!”

둘째 손녀의 말에 할아버지는 웃으며 대답한다.

“요령이 있어야 해. 할아버지가 아빠에게 잘 가르쳐 줄게.

아빠에겐 비밀이다. 아빠가 속상해할 수도 있어.”


“쉿!”

작은 손가락이 입 앞에 꼿꼿이 세워졌다.

진지한 얼굴로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손녀의 모습에

할아버지도 따라 한다. “쉿.”



아이들이 학원을 가면, 할아버지는 오후 늦게 운동을 다녀온다.

동네 산책로를 따라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쯤 걷는다.

그는 어딜 가도 자신의 루틴을 유지한다.

여행으로 장소가 바뀌어도, 삶을 대하는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혼자 있는 시간도 즐겁지만,

가끔은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동해에 오면 정신이 없지만, 그게 싫지 않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간다.


어김없이 동해의 아침이 밝았다.

아이들은 등원 준비를 하고,

손녀의 엄마는 아침만 되면 예민하다.

손녀들은 그런 엄마의 예민함을 묵묵히 참아주는 듯하다.


‘고생이 많다.’

할아버지는 조용히 생각한다.


“잘 다녀와!”

아이들이 기분 좋게 학교에 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더 활짝 웃어 보인다.


“다녀오겠습니다!”

아이들이 웃으며 나간다.

“아빠, 다녀올게요.”

그렇게 아파트 복도에 목소리가 울리고, 문은 닫혔다.



딸아이는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바로 아침 운동을 나간다.

한 시간쯤 지나면 다시 돌아온다.

그녀가 오기 전, 이 시간을 즐겨야 한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사서 모았던 레코드판을 꺼내 들었다.

딸아이에게 물려줬지만,

그녀는 들을 여유가 없는 모양이다.


‘나라도 너희들을 들어주마.’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플레이어에 바늘을 올렸다.

오래된 LP판은 가끔 소리가 튀었지만,

그것 또한 듣는 맛이 있었다.


딸아이에게 배운 캡슐커피 기계에

캡슐 하나를 넣고 버튼을 눌렀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커피 향이 집 안 곳곳으로 퍼졌다.


햇살이 아파트 거실 베란다를 통해 들어오며

집 안은 점점 더 밝아졌다.

가방에서 가져온 책 한 권을 꺼내

거실 소파에 앉아 음악과 함께 읽는다.


커피 향은 점점 진해지고,

귀에 들리는 음악은 그를 책 속으로 더 깊게 끌어당겼다.

머리가 희끗한 할아버지였지만,

잠시 그는 할아버지도, 아저씨도, 어린아이도 아닌

그저 ‘그’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이 든 것도, 시간도 잊고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이 시간을

조금 더 오래 붙잡고 싶었다.


삐삐삑삑― 띠로리. 철컥.

그녀다, 그녀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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