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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현 Nov 03. 2024

흐르는 대로...

<B12층> 큰 강이 흐르는 그곳에 나를 맡긴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게 딱 하나 있다.

바로 '시간'이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 그만큼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방금 지나간 과거를 잡아보려고 해도 시간이란 무색하게 이미 현재를 달린다.

검은색 커서가 깜빡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른다.

흘러가는 시간을 역행하지 못하니, 우리가 타임머신을 만들지 않는 이상 그저 마주할 수밖에 없다.


나는 B13층에서 B12층을 오르는데 정말로 많은 시간이 걸렸다.

혼자서는 견딜 수 없던 시간들과 옥죄이는 감정이 수시로 들어올 때면,

올라가던 계단이 더욱 버거울 때가 많았다.

마치 나 자신이 죄인이 된 듯, 내가 다 잘못한 듯, 생각했던 작아진 내 모습을 보니 너무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리곤 세상이 싫어지는 마음이 뭔지도 알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했다.

'왜 피해자는 힘들고 가해자는 편하게 지내는가.'

현실 반영이 제대로 된 대사이지 않은가. 과연 가해자는 자신을 가해자라 생각할까?

아니다. '그' 또한 피해자라 우기며 살아간다. 그렇게 자신을 피해자로 탈바꿈하며 떳떳하게 살아간다.

결국, 이 세상엔 피해자들밖에 없는 세상이 되는 거다...


하지만 인정해야 한다. 이기적인 사람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한다.

남을 배려한다는 생각은 자신에게 그 사람이 이로울 때 발현한다.

그 사실을 알기에 억울함이 더 가중된다.

그럴수록 '자책'이라는 블랙홀에 빠졌다.

이미 한 번 빠져나온 적 있는 자책의 블랙홀은 더 빨려 들어가기 전에 겨우 나오긴 했지만...

또 언제 생길지 몰라 항상 경계를 하고 있다.


그렇게 세상을 미워하고 등지려 했던 과거를 벗어나, 나는 또다시 나아가기로 다짐했다.

멘탈이 흔들렸다는 건 마음이 흔들렸다는 거다.

'몸은 마음의 도구'이니 몸을 더 단련해야겠다는 생각을 빠르게 내렸다.


지난 글에서 댓글을 달아주신 '뉴휴먼'분의 조언도 도움이 많이 됐다.

덕분에 '가을날이 청명하고 좋은' 세상을 다시 마주하게 되어 감사할 따름이다.




인생에는 고통 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한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는 고통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하는 말이다.

누구는 그 고통을 여러 번 나눠서 받는가 하면, 또 다른 이는 고통을 한 번도 못 느끼다가 나중에 한 번에 겪는다고 한다.


이렇듯 수많은 고통이 한 번에 찾아오면, 대부분은 그 고통을 직면하기 힘들어 애써 외면하려고 한다.

나도 그랬다. 이별의 아픔정도야 겪어본 적이 있기에 아픔을 인정하려 했지만,

이 작품을 연재하게 되기까지 일련의 과정들은, 이별로 승화하기엔 이별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오히려 가볍게 느껴졌다.

아니, 어쩌면 이별이라는 단어는 작디작은 구슬 크기의 고통에 불과했다고 느낀다.

그래서 나는 고통을 외면하려고 자꾸 도망치려 했다.

반성하자.


그럴수록 나는 나 자신에게 더더욱 이런 말을 끊임없이 해줬다.

터널 속에 어둠이 무섭다고 등 뒤의 빛을 향해 역행할 것인가?

그건 지나간 과거의 영광을 찾겠다고 다시 뒤로 가는 행동과 마찬가지다.

물론 현재의 나도 지나간 과거의 영광을 찾고 싶어 하는 게 맞다.

그때의 나 자신이 얼마나 세상 앞에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살아왔었는지를 말이다.

하지만 현재 스스로 들어간 길고 어두운 터널을 그대로 걷기로 했다.

등 뒤로 따가운 햇살이 아직 비치고 있지만, 그건 지난날의 영광일 뿐.

뒤는 잠시 돌아볼 수 있겠지만, 몸은 그저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이번주는 내내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의 삶.

인생은 그저 사람들이 만들어낸 '시간'이라는 강물에 각자의 몸을 맡겨 여행하는 여행자들이 되는 것 아닐까?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모를 실오라기처럼 얇은 물에 내 몸을 담그며, 여행은 시작된다.

이 실오라기 같은 물이 내 삶의 강이 되는 젖줄인 줄도 모른 채 말이다.

그렇게 물은 세차고 빠르게 중력에 의해 밑으로 흘러간다. 거스를 수 없다.

좌우로 굽이치는 실오라기 물은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또 다른 실오라기 물을 만난다.

그 물은 합쳐져 더 큰 물줄기가 된다.

그렇게 사방에서 모인 물줄기들이 만나 강을 이루고 강들이 모여 더 큰 강이 된다.

큰 강은 마침내 겉으로는 잔잔해 보이는 광활한 바다와 마주한다.

이제는 파도가 내 몸을 밀어주고, 바람이 나를 밀어준다.

때로는 바다 생물들이 나를 밀어주고, 그마저도 없으면 내가 직접 헤엄쳐 간다.


그러다 몸이 지쳐 가만히 있게 되면, 나는 금방이라도 바닷속 깊숙한 곳으로 사라질 것 같다.

그럴수록 몸은 경직되고 몸부림을 치게 된다. '이게 맞는가?'라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될 때면.

마침내 모든 힘을 빼고 바다에 몸을 맡긴다.

바다를 등지고 누우니 하늘이 보인다. 햇빛이 보인다.

하늘을 나는 갈매기들이 보인다.

그렇게 흐르는 대로  내 몸을 맡긴다.

흐르는 대로.




요새 날이 부쩍 쌀쌀해졌다. 지난여름의 길이가 길어서 그런가 항상 텁텁하고 답답했던 저녁공기는 어느 순간 스산한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나는 매일은 아니더라도 생각이 많아지면, 그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러닝을 시작했다.

특히 넓은 공원에서 바깥쪽 코스로만 도는 나만의 길을 만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항상 시계방향으로만 돌고 있었다.


어느 날, 바람이 거세게 부는 저녁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공원에 도착해 타이머를 켜고 시계방향으로 코스를 돌았다.

여전히 내 옆으로는 나와는 반대로 걷고 뛰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다.

그때, 거센 바람도 계속해서 내가 뛰는 방향의 반대로 불었다.

역풍. 바람은 내게 더 이상 오지 말라는 듯 몸을 밀어댔다.

거센 바람에 몸이 더 빠르게 지치는가 싶어 문득 뛰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누가 이 코스를 뛰는데 시계방향으로 돌라고 했었나?'

이 생각과 동시에 런닝을 멈추고 곧바로 몸을 180도 돌렸다.

그러자 등을 타고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다.

방금까진 누가 내 얼굴을 마사지하는 듯했던 강한 바람이었는데, 이제는 바람이 땀이 흐르는 머리와 등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렇게 바람의 방향대로 뛰다 보니, 앞서 바람에 저항하며 달려온 것보다 몇 배는 더 쉽게 뛸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정해놓은 기준에 얽매여 한 곳만 보는 게 아닐까.

그 기준이 아니다 싶은데도 맞기를 바라듯이 말이다.

런닝을 하면서 배우기도 했지만, 세상 큰일을 겪으면서 많이 느꼈다.

이 세상의 풍파를 작은 몸뚱이 하나로 다 맞아가며 저항을 하면,

마음은 우격다짐하겠지만 몸이 다 망가진다.

앞서 말했듯, 몸은 마음의 도구이다.  몸이 망가지면 마음도 서서히 무너져 내린다.

그럴 때 필요한 게 바로 등을 돌려보는 것 아닐까?

역풍이 순풍이 되는 그 순간.

그걸 느끼는 순간, 앞이라고 생각했던 길이 사실은 뒤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순풍을 맞는 순간 우리는 세상의 도움을 받아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흐르는 대로 내 몸을 맡겨보자.




최근에 받은 심리상담에서 선생님께 들은 말이다.

'대현 씨가 지나치게 감정을 억제하는 모습이 보인다.'

맞다. 거진 30년 동안 공들인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순간을 목격하고 난 뒤,

내게 몰아쳐 오는 모든 감정을 밖으로 표출할 시간이 없었다.

감정이라는 단어는 그저 단어로 전락해 버렸고,

오로지 참고, 참고, 또 참았다.


어쩌다 현재 느끼는 감정이 내 생각과 일치하면 그제야 분출했다.

그러다 보니 현재 느끼는 감정과 생각이 일치하지 않으면 그대로 감정을 억제해 버렸다.

이게 일상이다 보니, 감정이 고장나 버렸다.

뒤늦게라도 알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지금이라도 이 고장 나버린 감정을 고칠 수 있으니 말이다.


결국 고치는 방법은...

선생님께서는 흐르는 대로, 느끼는 대로 그저 표현해 주는 것이라고 말해주셨다.

다만, 감정의 선을 정해 감정이 너무 지나 지다 싶으면 스스로 끊어줘야 한다고도 말씀해 주셨다.

그렇지 않는다면 분명 '트라우마'로 남을 거라 하셨다.


'트라우마'라..

살면서 한 번도 트라우마에 대해 들어만 봤지 경험해 본 적 없이 살았건만..

어느 틈에 나한테 찾아온 건지.

한 번 생긴 트라우마는 정신적인 불안을 동반해 곧바로 없앨 수 없다고 한다.

그만큼 깊은 곳에 계속 잠재해 있는 거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트라우마가 생겼을 때 어떻게 마주하며 살아야 하는가.


정답은 어렵지 않다. 밑의 글귀처럼 행동하고 생각하면 된다.

[트라우마]에 관한 글귀를 가져와 봤다.

당신의 무능력과 실수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고 자책하는 것도 멍청한 일이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
부정하지도 자책하지도 말고,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고, 깨끗이 인정하고 오늘을 살아갈 뿐이다.

- 이슬비 에세이 <분명 좋은 일만 생길 거예요. '트라우마' 중.


삶에 생각지도 못한 큰일이 발생했을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오늘은 이 질문과 함께, 정리하며 글을 마쳐본다.

우리의 인생을 흐르는 대로, 순풍을 맞으며 살아가다 보면 더 넓고 뜻깊은 세상을 만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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