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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투덜이 Sep 22. 2023

어디선가 삶을 이어가고 있을
‘노력’님을 기다립니다

- 나만의 시간을 가꿀 줄 알았던 당신을 기억하며

 ‘노력’님의 글 알람이 울리지 않은 지 어느새 10개월이 지났습니다. 2년 전이던가요, 그때도 한동안 소식을 접하지 못한 적이 있었지요.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의 소식으로 다시 돌아와 한숨 돌렸던 그때와 달리, 점점 길어지고 있는 무소식에 애가 탑니다. 지난해 11월 당신이 올린 마지막 소식에 댓글이 쌓여갑니다. 나처럼 노력님을 걱정하는 카페 회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나 봅니다.    

  

 8년 전, 항암치료 중 하루에도 열 번 넘게 드나들던 암 카페를 언제부터인가 먼저 두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일상으로 돌아갔다는 뜻이겠지요. 비슷한 시기, 가족보다 끈끈했다 여겼던 익숙한 닉네임들의 출입이 점점 뜸해진 것처럼 나 역시 자연스레 카페가 흐릿해졌습니다.

그럼에도 노력님의 글은 늘 기다리는 ‘정기 간행물’이었습니다. 구독 알림이 뜰 때마다 반가운 마음으로 카페에 들어가곤 했습니다. 

    

 3천 건이 넘는 노력님의 게시물은 늘 달랐습니다. 맛난 음식과 멋진 풍경 사진, 일터에서의 근황, 이런저런 운동하는 모습이 대부분이었지요. 처음에는 ‘이 사람은 환자가 아니라 보호자인가? 아니면 완치 후 이렇게 꾸준히 글을 올리는 걸까?’ 어리둥절했답니다. 다른 환자들의 글에서 보이는 두려움과 공포도, 치료받는 이의 근황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반인’의 블로그에서나 볼 법한 사진과 글을 날마다 올리는 당신은 참 궁금한 존재였습니다.     


 심상히 전하는 소식을 읽으며 알게 됐지요. 가끔 다녀왔다는 ‘학원’이 어디를 뜻하는지 말입니다. 심지어 그 학원은 나와 같은 곳이어서 더 반갑게 느껴졌습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분명히 같은 공간을 나눈 순간이 있었을 것 같아 친밀감이 더해졌다고나 할까요.

치료받고 있음은 분명한데 기간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 꾸준히 직장을 다니며 이 모든 과정을 겪어내고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당신의 첫 글은 내가 발병한 해보다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울려온 노력님의 알람, 얼굴 한번 본 적 없지만 고우(故友)의 편지인 듯 기다려지는 소식입니다.     

 

 글을 읽으며 혼자 짐작하곤 했답니다.

‘사진과 내용이 여전하네. 늘 그렇듯 잘 겪어내고 있군.’ ‘오늘은 반찬 만들지 못하고 식당 밥 먹었네. 치료 많이 힘들었나 보다.’ ‘어쩌지, 병원에서 찍은 사진이 늘고 있어. 치료약도 자주 바뀌는 것 같은데, 괜찮은가?’

종교는 없지만, 간절히 기도했어요. 점차 뜸해지고 있는 알람이 다시 자주 울리기를. 기한 없는 치료, 저렇듯 최선을 다해 감당하는데 지금처럼 만이라도 당신의 삶이 이어지기를. 오래오래 소식을 받아볼 수 있기를.     


 내 인생에 있을 줄 몰랐던 암 환자가 된 2015년은 삶이 이어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실감하게 된 해였습니다. 나도 모르게 삐져나오는 공포와 두려움, 그 감정의 무게를 알게 된 시간이기도 합니다. 회원들의 게시물이 암울한 내용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었던 건 그런 이유겠지요. 암 환우들의 카페는 정보와 아픔을 나누며 다독이는 약이기도 했지만, 스며드는 불안과 고통으로 서로를 침잠하게 만드는 독으로도 작용하는 공간이었습니다. 힘이 되는 게시 글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나보다 어린 나이, 더 오랜 치료 과정을 감당하고 있던 노력님. 병증 역시 상당히 위중함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글에서 ‘무섭다’는 내용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힘들다는 글은 가끔 있었지만, 그조차 자신이 보낸 일상 소개 끝에 살짝 내비칠 뿐이었습니다. 


 게시물 제목 대부분이 ‘맛점 하세요.’나 ‘맛저 하세요.’였지요. 늘 맛있는 식당을 찾아 자신이 먹은 음식 평을 남기고, 바쁜 시간 쪼개 직접 만든 요리와 반찬 사진을 몇 장씩 올려주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치료만으로도 힘들 텐데 직장도 다니며 음식까지 직접 만들다니, 당신의 사진은 나를 다독이는 위로이자 자꾸 나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아 주는 자극제였습니다.

날마다 올리는 운동 사진은 또 어떻습니까. 걷기를 한 날이면 만보는 기본이고, 헬스를 했다 하면 한 시간 반은 가볍게 넘는 인증 사진들. 닉네임이 왜 ‘노력’인지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수술 후 병기와 치료방향이 결정되고 내가 올린 글에 노력님은 ‘자신을 믿으라.’는 답을 올려주었지요. 카페 터줏대감인 노력님은 내가 처음 올린 글에도, 치료를 마쳤다는 소식을 전할 때도, 해마다 정기검진 통과 소식을 전할 때도 늘 답 글을 달아주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사람들의 온갖 질문과 검진 통과 글에서 어렵지 않게 노력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다른 회원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마음이 담긴 따뜻한 댓글들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써준 글을 읽으며 공포와 불안함으로만 여겨질 수 있는 시간을 자신이 만들어가는 시간들로 채워가는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늘 노력님의 삶을, 시간을 응원해 왔습니다.     


 살아갈 날이 하루하루 줄어들고 있다 여겨지니 자꾸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어디까지가 삶인지, 살아지는 것 말고 내가 사는 삶이란 무엇인지, 삶다운 형태와 내용이 존재하기는 하는지 맥락도 없이 사념이 둥둥 떠다닙니다. 이런 생각은 근거 없는 두려움과 서글픔을 동반하지요. 갑자기 미래가 회색빛이고 사는 게 시시해집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면 당연히 이어짐으로 보상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노력님의 알람 글이 울리지 않는 세상이 부당하게 여겨집니다. 내가 겪은 일도 아닌데 갑자기 모든 게 부질없어지는 염세주의자가 됩니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 사실 노력님이 어떤 생각으로, 무슨 마음으로 자신의 시간을 채워왔는지 알지 못합니다. 다만 맞춤법이 틀려가면서도, 수혈 후 헛소리를 할 정도로 힘든 치료과정을 겪고 있음이 분명한데도 노력님은 여전히 음식 사진을 올려주었어요. 하루하루 흐르는 시간을 나만의 언어로 표현하고 해석할 줄 알았던 분임은 분명합니다. 

잘 사는 게 무언지도 모르면서 온갖 걱정과 두려움에 자꾸 나약해지는 내게 자신의 시각을 가지고 삶을 대하는 노력님은 큰 울림이 되어준 사람입니다.     


 예전처럼 긴 휴지기를 보내고 계신 걸까요. 결론을 내지 않고 어디선가 삶을 이어가고 있을 노력님을 기다립니다. 여전히 맛깔스러운 음식과 멋진 풍경 사진으로 당신의 일상을, 삶을 전해줄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알람이 다시 울리는 날을 노력님에게 보여줄 나만의 사진을 준비하고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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