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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투덜이 Mar 27. 2023

「여인초 살리기 프로젝트」 240일째

- 살아있는 것들과 관계 맺기

  당진 생활 8년 만인 2022년 7월, 나는 우연한 기회에 월세살이를 끝내고 아파트를 장만했다. 오십 넘은 나이에도 굳이 내 집을 정하지 않고 살았던 이유는 이곳저곳 근무지를 옮겨 정착하기 어렵기도 했지만, 생활공간으로서의 집에 큰 무게를 두고 살지 않았던 것이 더 컸다. 그저 노후를 위한 재산가치일 뿐, ‘먹고 잘 수만 있으면 그게 집’이라는 생각이었다고나 할까. 혹은 언제 떠나도 아쉬울 것 없는 뜨내기 같은 마음으로 살아왔다고 할 수 있겠다.  

   

  독서공동체 사람들과 집들이를 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울리는 초인종 소리와 함께 상상도 못 할 대형식물 화분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잘못 배달된 줄 알고 황급히 문을 가로막는 나에게 모임 친구들이 “집들이 선물이에요.”라며 활짝 웃었다. ‘들숨엔 건강, 날숨엔 행복이 가득하세요.’라는 멋진 덕담과 함께.     


  “어떻게, 이런 선물을?”     


  순간 말했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해석은 달랐을 것이다. 망연자실한 표정을 들킬 것 같아 황급히 화분을 옮기는 척 고개를 아래로 박았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내 사랑스러운 친구들이 조금도 눈치채지 않았기 바라면서.      


  나는 식물을 잘 기르지 못한다. 말려 죽이기, 적셔 죽이기, 얼려 죽이기 등 온갖 다양한 방법으로 ‘처리’하는데 심지어 잘해보려 하면 할수록 사망 속도는 빨라진다. “내가 식물을 사랑하는 방법은 관심을 두지 않는 거야.”라고 종종 말할 정도였다. 화원을 하는 지인이 죽이는 게 더 힘들다고 말하며 선물한 식물조차 보내 버려 결국 조화나 사라는 이야기를 듣는, 나름 ‘신의 손’이었다. 


  더욱이 당진과 광명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는 나였다. 여름과 겨울이면 한두 달씩 떠나 있는데 당최 덩치 큰 이 아이를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이름도 하필 ‘여인’초. ‘여인’을 보내 버릴까 봐,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들이 마음으로 준 선물을 해치우게 될까 봐 첫날부터 얼마나 떨었는지 그들은 전혀 몰랐을 것이다. “1주일에 한번 물을 흠뻑 주면 잘 산다.”는 하나마나한 조언과 함께 화원 주인이 떠나간 뒤 ‘흠뻑’의 기준이 무엇일까 생각하느라 이후 대화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다. 이 녀석을 보내버리면 귀한 선물을 준 사람도 잃게 될 것 같았고, 그들이 빌어준 건강과 행복도 내 차지가 안 될 것 같다는 황당한 생각이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240일째 생존 프로젝트에 성공 중인 여인초

  「여인초 살리기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당장 당진을 한 달여 떠나 있게 되니 물 주기가 문제였다. 자동 물 주기 기계가 있다고 해서 찾아보다 물받이가 넘쳐 장판이 들떠 버렸다는 후배의 경험담으로 탈락. 베란다로 옮겨 큰 대야에 물을 받아놓고 화분을 넣어둘까 생각했지만 이 녀석 살리다 내 허리가 나갈까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물을 주러 일주일에 한 번씩 광명과 당진을 오가기로 했다. 예전 같으면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고작’ 식물에 물이나 주려고 피 같은 시간과 휘발유를 낭비하다니. 과거의 나는 기름 값이 더 든다고 비웃었을 테지. 지금의 나는 진심으로 ‘여인’을 잘 보살피고 싶다. 친구들의 마음이 고맙기도 하지만 정성을 쏟는 그 순간이 즐겁다는 게 더 큰 이유다. 내가 기울여준 방향으로 힘차게 뻗는 잎이 고맙고, 뜻하지 않게 돋아난 새순을 만나는 순간이 행복하다.      


  처음엔 무슨 볼일이라도 있는 양 당진행의 이유를 둘러댔지만 이제는 당당히 식물에 물을 주러 가야 한다고 말한다. 숙제처럼 오가는 길이 아니라서 운전대를 잡는 손엔 여유가 있고, 창 밖 풍경이 친근하게 눈에 담긴다. 지인들과의 즐거운 한때, 내 공간에서 누리는 한가한 시간은 「여인초 살리기 프로젝트」의 덤이다.  

     

  나는 살아있는 것들과의 관계 맺기가 늘 버거웠다. 관심과 노력이 요구되고, 책임이 필요한 존재들. 부족하거나 넘쳐서, 혹은 적당한 시기를 놓쳐서 나의 의도와 다른 결말로 이어지는 순간들이 두려웠다. 상대도 나도 생채기가 났고,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이런 상처가 힘겨워 뜨내기처럼 살아왔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상처 입지 않기 위한 ‘거리두기’가 내 공간을 고집하지 않았던 이유에 한몫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나는 여인초와 8개월째 동거 중이다. 신경을 쓴다고 쓰지만 엄청 잘 자라지는 않는다. 적당량의 물 주기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물받이가 넘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도 말라버린 잎이 있으면 꼭 새로 돋는 녀석들도 있어 평균 네 개의 잎은 ‘사수’하고 있다.   

  

  관심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인초를 살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친구와 나만의 ‘역사’가 생겼음을 안다. 처음 만난 날의 황망함, 물바다가 된 바닥을 온갖 욕과 함께 닦던 순간, 말라버린 잎을 차마 자르지 못해 전전긍긍했던 일, 목을 가누는 아이처럼 하루가 다르게 단단히 잎을 세워 대견해하던 날들의 기억이 생생하다. 프로젝트에 실패한다 해도 사라지지 않을 순간들, 이 시간을 생채기가 아닌 추억으로 여길 힘이 생겼다.     

  내 공간에서 추억을 함께 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먹고 자기만 하면 됐던 집은 이제 ‘한 번도 안온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는 00 카페’로 불린다. 울타리 안에 누군가를 들이다니, 옛날의 나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거리두기’도 이제 해제를 선언해 볼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 안전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무료했던 생활이 「여인초 살리기 프로젝트」와 함께 달라지고 있다. ‘살아있는 것들과 관계 맺기’ 정답이 하나일 리 없으니 나는 나를 응원할 힘을 기르는 중이다. 실패하더라도 내가 쏟은 시간, 쌓은 추억, 진심의 순간들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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