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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투덜이 Jun 16. 2023

로스코 예배당, 심연 속 나를  다시 만날 그곳

  “혼자 오셨어요?” 서류에 눈길을 준 채 의사는 물었다.    

 

  아, 맞구나.     

 

  2015년 5월, 암 환자가 되었다.


  드라마에서 암 선고를 받은 환자들은 비틀비틀 벤치에 주저앉아 지내온 인생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던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진단 소견과 향후 일정 듣기, 검사 계획 안내, 예약과 수납 등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내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느낄 틈이 없었다. 직장에 병명과 추가 검사로 인한 결근을 알리며 연신 죄송하다 말했다. 상대방은 지금 죄송할 때냐며 다독였지만 위로조차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별일 아닌 것으로 여기고 싶은 잠재의식 때문이었나 보다.  

   

  이튿날 새벽 다섯 시로 검사가 잡혔다. 병원은 서울, 부모님 집이 15분 거리에 있었음에도 굳이 당진에 돌아왔다. 돌풍인가, 때 이른 태풍인가에 대비하라는 예보가 내려진 상황이었다. 베란다 창문에 신문지를 바르고, X자로 테이프도 붙이느라 쩔쩔맸다. 월세 집 창문을 지키는 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듯. 내일 당장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닌데 물건 정리하느라 나머지 시간을 보냈다. 잠시도 가만히 있기 어려웠다.    


  공포를 이기려면 시간과 수고가 필요하다. 조금씩 스며들어야 감당할 수 있다.    

 

  다음날 새벽 세시 반인가 서울로 출발했다. 잠이라고 제대로 잤을까. 어차피 잠자기 틀린 날이었으니 핑계가 필요했을 뿐이다. 휘몰아치는 비바람에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서해대교를 지그재그로 건넜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오가는 차가 거의 없었기에 살아서 서울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암보다 교통사고로 먼저 죽겠네.’ 이를 악물고 제멋대로 꺾이는 핸들을 부여잡으며 생각했다.   

   

  공포를 이기기 위해 다른 공포가 필요할 때도 있다.   

   

  어지러운 마음을 살아서 무사히 병원까지 도착하기 위한 사투로 잠시나마 잊었다. 추가 검사 후 치료방향이 결정됐다. 수술과 16회의 항암, 방사선 치료까지, 10개월 동안 병원을 집처럼 드나들었다. 참 더디게 흘러간 시간이다.

     

  치료가 끝나고 8년째, 남들과 같은 일상을 살고 있다. 다시는 평범한 나날이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역시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투병 기간 누구보다 씩씩한 환자였다. 예산 계획을 촘촘히 세워 병원비 손 벌리는 일 따위 없었다. 혼자 항암주사 맞으러 가고 하루 두 차례 운동을 빼먹지 않았다. 요가와 스트레칭을 배워 재활에 힘을 보탰다. 주민 센터 바리스타 과정에 등록하여 커피 내리는 법도 익혔다. 같이 배운 수강생들은 환자임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더운데 왜 항상 모자를 쓰는지 궁금해 하기는 했지만. 병문안 온 지인들은 전혀 환자 같지 않다며 응원했다. 가족들도 가끔 나의 신분을 잊었다. 자고 일어나 민머리인 나를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식구들 앞에서 최소한 비니라도 쓰고 ‘정상’인 척했었기에.   

  

  속마음은 전혀 씩씩하지 않았다. 씩씩할 수가 없었다. 아무 일 없는 듯 하루를 보냈지만 불쑥불쑥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암은 실체 없는 침략자였다. 증상을 느끼기 전 발견된 경우라 치료 과정의 고통이 더 크게 다가왔다. 적의 정체와 공격위치도 모른 채 전투하는 기분이랄까. 아픈 적 없으니 좋아지고 있다는 확신도 없었다. 수술 예후가 좋다는 의사의 말에 안도감도 잠시, 조직검사 결과 세포증식지수가 엄청 높게 나와 전이, 재발 두려움이 시작됐다. ‘스스로 책임지는 삶’에 난 생채기도 정신적으로 큰 상처였다.      


  한번 시작되면 좀처럼 끝날 줄 모르는 상념이 나를 괴롭혔다. 딱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나를 갉아먹는 느낌. 스티븐 킹 소설 「더 미스트」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해치는 괴물보다 실체를 가리는 ‘안개’에 더 공포감을 느낀다. 나 역시 병으로 인한 고통보다 정체 모를 온갖 부정적 감정이 자라는 게 훨씬 힘들었다.     


  암 환자가 됐다는 것은 ‘설마’라는 말이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는 뜻이다. ‘나라고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은 ‘한 번 불운이 두 번 될 수 있다.’는 가정으로 이어졌다. 아픈 게 힘든 건지, 재발이 겁나는지, 죽는 게 무서운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두려웠다. 실체를 분석해 보겠다고 머리를 쓰면 쓸수록 불안감이 커졌다. 이성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산책에서 돌아오던 어느 날, 집 앞 횡단보도에서 또다시 공포감이 몰려왔다. ‘이렇게 벌벌 떨며 사느니 실수인 척 한 발 내디뎌버릴까.’ 정신이 번쩍 났다. 그럼에도 울지 못했다. 두려워한다는 걸 인정하면 헤어나지 못할까 봐. 괜찮은 척하다 보면 괜찮아질 거라 믿으며.      


  우연한 기회에 친구와 마크 로스코 전시회에 갔다. 연극 「레드」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그는 사각 형태를 채우는 색감과 근원적 감정을 표현하는 면 추상회화의 거장으로 널리 알려진 화가다. 나의 목적은 오로지 시간 때우기였고 작품에 흥미가 있던 건 아니다. 더욱이 추상화는 내 관심분야가 아니었다.     


  “로스코 그림은 관람자와 작품 사이의 공간 배치가 매우 중요하다.”는 도슨트 소개가 있었다. 작품과의 거리, 조명 배치와 조도, 다양한 형태의 관람 좌석 등 전체적인 분위기가 여느 전시회와 확연히 달랐다. 사람은 많았지만 줄지어 흘러가며 볼 수 있는 작품이 절대 아니었다.      


  전시회 곳곳 ‘사각 덩어리’들로 가득했다. 노란 사각형, 빨간 사각형, 회색 사각형. 언뜻 비슷해 보이나 재료의 성질도, 표현 기법도 전혀 달랐다. 무슨 안료를 섞어 채색하고, 어떻게 덧칠할까 화가가 고뇌한 이유는 실제 그림을 볼 때만 알 수 있다. 단언하건대 로스코 작품은 직접 관람이 아니면 아무 의미 없다.      

비로소 내재된 감정의 실체와 마주했다.      


  공포는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다. 겪는 것이다.      


  무사히 겪어내지 못할 수도 있지만 내 안의 온갖 상념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는 게 첫걸음이다.      

혼자 운전해 병원 문을 나서던 순간의 아득함, 세상을 잘못 산 것 같은 기분, 뭔지 모를 억울함과 분노, 부모님을 향한 죄송함, 현실이 된 죽음에 대한 공포. 암 선고받은 날 당진으로 돌아와 창문에 테이프를 붙이며 애써 외면했던 나를 바라보았다. 몇 달이 지나도 생생히 남아 있지만 차마 들여다보지 못했던 심연 속 마음을 꺼냈다.  

   

  우수수 떨어지던 머리카락, 핏줄을 타고 흐르던 항암 약의 기분 나쁜 온기, 빠진 발톱, 아프고 쑤실 때마다 전이 됐나 벌벌 떨던 기억, 여자도, 인간도 아닌 환자에 불과한 초라한 나. 치료받으며 겪고 있는 감정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무섭다고, 겁난다고,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작품의 덧칠 하나하나가 켜켜이 쌓인 고통의 흔적으로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꺼이꺼이 울었다. 감당하느라 애쓴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었다. 소리 내 우는 것만으로 위안이 되었다.     


  마크 로스코 작품을 본 70% 이상이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심연 속 나를 만난 이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밑바닥에 감춰둔 자신을 대면하는 순간이 항상 좋은 결말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어떤 이는 작품을 보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으니 말이다. (화가 본인도 우울증으로 자살했다.)     


  다행히 나에게 그의 그림은 두려움을 마주하여 내면의 힘을 기르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계기가 되었다. 작품이 나인 듯 마주한 순간은 꽤 오랫동안 그늘진 스스로를 바라볼 힘이 되었다.     


  미국 휴스턴에 로스코 예배당이 있다. 1971년 세워진 이 건물은 모든 종파를 아우르는 휴식의 장소이자 내면과 마주할 수 있는 건축물과 작품으로 이뤄진 명상공간이라고 한다. 기회가 된다면 이곳에 방문하여 다시 한번 심연 속 나를 직면할 기회를 갖고 싶다.      


  단, 내 안에 어떤 파도가 일렁이고 있다 해도 받아들일 내공이 쌓였는지 되새긴 다음 방문할 일이다.

  (표지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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