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여행 1]
다시 여행길에 나섰다.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힌 지 3년 만이다. 인천에서 출발해 로마를 경유해 시칠리아를 두 주 동안 둘러보고 북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에서 한 주를 보내는 일정이다. 인천에서 이른 아침에 떠나는 항공편이라 하루 전에 부산을 떠나 공항 인근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리 좋지 않은 스케줄이지만 코로나 이후 운항 편이 줄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오랜만의 여행이라 미리 배경 정보도 읽어보고 준비를 해야 마땅하지만 이번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떠나기 전날까지 온갖 숙제로 정신이 없어 서둘러 무방비 상태로 길을 떠나는 모양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약간의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묘한 심정이었다.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공항철도역으로 들어섰다. 승강장 반대편에서 출근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마치 길을 잘못 들어선 듯한 착각이 잠시 들었다.
오랜만에 온 공항은 낯설었다. 코로나를 지나는 동안 긴 줄을 서서 탑승권을 받던 낯익은 풍경은 사라진 듯하다. 이제는 모두 보딩패스를 출력해 와서 가져와 카운터에 짐만 맡긴다. 항공편도 대폭 줄었다. 그래선지 공항은 좀 썰렁해 보였다.
사실 오랜만이긴 해도 이젠 여행을 떠난다고 해도 별 설렘은 없었다. 일찍 출국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 부근에서 베이글과 커피로 요기하면서 오가는 사람을 구경했다. 그리고는 문득 깨달았다. 새로운 이국적 여행지에 대한 갈증보다는 여행에서 의례 같은 이런 소소한 일상이 그리웠던 거다.
비행기는 만석이었다.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비좁은 이코노미 좌석에서 14시간이 넘는 시간을 버티는 데는 여전히 무한한 인내심이 필요했다. 여행은 출발하기 전까지는 설렘과 로망일지 몰라도 집을 떠나는 순간 길고 긴 고통과 기다림의 일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실감했다. 피곤에 찌든 몸으로 로마 공항에 내리자마자 다시 팔레르모행 저가항공편을 찾아서 서둘렀다.
아직 코로나 사태가 끝나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마스크를 쓴 사람은 구경하기조차 어려웠다. 만일의 사태에 우려해 여행을 계획했다 취소하기를 거듭했던 내가 머쓱해지는 풍경이었다. 예전처럼 터미널은 혼잡하고 직원들은 불친절했으며, 지나는 길목마다 풍기는 진한 담배 냄새가 거슬렸다. 저가항공 대기실은 그야말로 사람으로 산과 바다를 이루었다. 전광판에 끊임없이 뜨는 항공편 상황 정보가 유럽의 공항은 예전으로 되돌아갔음을 말해주었다.
착륙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뜨고 항공기는 선회하기 시작했다. 어두운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어둠 속의 팔레르모 시가지가 빛의 바다처럼 반짝였다. 이 작은 공항은 팔코네 로셀리노 국제공항이라 불리는데 마피아에 맞서 싸우다 암살당한 팔코네와 로셀리노 두 검사 이름을 붙인 것이라 한다. 출발 전 SNS에다 시칠리아에 간다고 하니 마피아 조심하라던 지인의 댓글이 떠올랐다. 마피아가 영화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공항 청사 밖으로 나오니 마음씨 좋아 보이는 듬직한 풍채의 택시 기사가 내 이름을 적은 탭을 들고 기다리고 있다가 반갑게 악수를 청한다. 팔레르모에서만 6일 밤을 투숙하기로 했더니 예약사이트에서 무료 택시 픽업을 제공해준 덕분에 이런 호사가 가능했다. 기사는 어두운 도심의 비탈길을 곡예하듯 이리저리 돌더니 도로 한켠에 내려주고는 사라졌다.
호텔인 줄 알았던 숙소는 그냥 도심 아파트 건물이었고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잠시 당황해서 어찌해야 할지 몰랐으나 잠시 후 주인이 환하게 웃으면서 문을 열어준다. 이동 중에 인터넷이 끊기다 보니 연락이 제대로 안 된 모양이다.
숙소에 들어서니 입구에는 거친 질감의 유화가 여럿 걸려 있었다. 가운데에 공용 거실과 주방이 있고, 화장실이 딸린 방 서너 칸을 호텔방처럼 별도로 사용하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방은 널찍했고 환하게 불이 켜진 거리를 향해 창이 나 있었다. 인천공항 부근 숙소에서 출발해 로마로 입국하고, 다시 팔레르모행 저가항공을 거쳐 숙소에 도착하는 데만 21시간이 걸렸으니 길고 긴 이동이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앞으로 3주 동안 혼자 버틸 생각에 갑자기 외로움이 몰려왔다. 이제 긴 여정에서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