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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소리 Dec 15. 2022

시내버스로 가는 중세 시간여행

[시칠리아 여행 3] 몬레알레

시칠리아는 교통이 매우 불편하다. 그래서 여러 도시를 순차적으로 이동하는 대신 팔레르모를 근거지로 삼아 인근의 여러 도시를 답사하기로 했다. 오늘은 하루를 늦게 시작하는 바람에 멀리 나가기에는 시간이 어중간했다. 팔레르모 근교의 몬레알레에 한나절 동안 다녀오기로 했다.      


숙소를 나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거리를 따라 서쪽으로 걷다 보면 보행자 도로가 거의 끝나는 부분에 독립광장이 나온다. 이 부근에서 389번 시내버스가 몬레알레까지 다닌다. 한국처럼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기 때문에 다음 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공원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10월인데도 한낮에는 한여름처럼 햇살이 뜨거웠다.      


버스는 관광객으로 만원이었다. 버스는 혼잡한 거리를 한동안 헤집고 다니더니 곧 시골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30분쯤 지나자 버스는 언덕 위의 한적한 마을에 도착했다. 산허리의 종점에서 산 아래로 눈을 돌리자 저 멀리 팔레르모 시가지와 지중해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몬레알레는 행정구역으로는 팔레르모에 속하지만 한적한 교외의 카푸토 산 언덕 위에 있는 작은 도시다.      


몬레알레는 팔레르모 근교의 한적한 언덕 마을에 불과하지만,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걸어 올라가면 거대한 중세 성당 건물이 나온다. 겉으로 보면 규모만 클 뿐 수수한 중세 건축물이었다. 점심시간이라 성당과 수도원은 문을 닫았다. 주변에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기념품 가게와 식당이 들어서 있었다. 성당 광장 벤치에 앉아 흰 구름이 떠 다니는 푸른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 한적하고 작은 마을과 대규모 중세 성당은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이 작은 동네에 뜬금없이 이 거대한 건물이 들어서게 된 것은 결국 권력자의 욕망 때문이다. 12세기 말 노르만 왕국의 굴리올레 2세는 할아버지가 지은 체팔루와 팔레르모 성당보다 더 멋진 성당을 짓겠다면서 돈잔치를 벌였는데, 그 결과 이처럼 거대한 성당이 들어섰다.      


입장 시간이 되어 성당 옆으로 난 입구로 들어섰다. 안내서에는 입장이 무료고 수도원 회랑만 돈을 받는다고 적혀 있다. 근데 지금은 네 군데로 세분해 별도로 입장료를 징수한다. 과거의 종교 유적도 자본주의형 스펙터클 사회라는 대세를 피할 수 없나 보다. 이 작은 마을에서 거대한 유적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하면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다.     

 

수도원의 뜰(클로이스터)은 중세 성당 구조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곳곳에 아랍풍이 역력하다.


고딕풍 성당 옆에는 수도원이 붙어있다. 작은 뜰을 네모 반듯한 회랑이 둘러싸는 구조는 중세 성당에서 흔히 보던 모습이었다. 하지만 기둥 장식이나 분수대 등에서는 오래전 스페인 안달루시아와 모로코에서 본 아랍풍 색채가 물씬했다. 그리스와 로마, 비잔틴, 아랍, 노르만 등의 세력이 번갈아 시칠리아를 지배한 결과 건축에서도 이 각 시대의 흔적이 뒤섞인 독특한 양식이 자리 잡았다. 몬레알레 성당은 인근의 팔레르모 대성당과 체팔루 성당과 더불어 노르만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 목록에 올라가 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성당 내부였다. 복도와 기둥 위 전체를 장식한 정교하고 화려한 모자이크가 시야를 압도했다. 성당은 규모도 규모지만 장식이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전면 제단 뒤 앱스에는 예수의 얼굴을 묘사

한 비잔틴풍의 거대한 황금빛 모자이크가 빛나고 있었다, 신랑, 즉 중앙 복도 기둥 위에는 구약성서의 사건을, 양쪽 복도인 측랑에는 신약 이야기를 묘사한 모자이크가 장식되어 있다. 성당 건물 북쪽에는 17세기 말에 바로크 양식으로 증축한 채플이 있어, 여기도 추가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보았다. 제단과 천장 벽은 한치의 여백도 없이 빽빽하게 화려한 조각으로 들어차 있어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제단 위의 예수상은 비잔틴 양식의 황금 모자이크로 제작되었다. 
성당 안에는 거대한 건축 작업을 주도한 굴리올레 2세의 석관이 안치되어 있다. 천정, 벽, 제단 등은 화려한 조각과 모자이크로 장식됐다.


성당을 나오다 벽에 안치된 무덤에 무심히 눈길이 미쳤다. 그런데 무덤의 주인이 성 루이, 즉 프랑스 왕 루이 9세였다. 두 차례 십자군을 이끌고 성지 원정을 주도했던 바로 그 인물이다. 두 차례 원정 모두 대참사로 끝난 것을 보면, 종교적 신심은 투철했으나 군사 전략가로서는 별 시원찮은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루이는 튀니지 카르타고에 8차 원정을 나갔다가 거기서 병사했고, 그 후 프랑스 왕으로는 유일하게 성인으로 추대되어 성 루이가 되었다. 루이의 유해는 파리 인근의 생 드니 성당과 튀니지아, 여기 몬레알레 등 세 군데에 안치되어 있다. 한동안 십자군 운동의 역사에 심취했는데, 그 이야기의 한 갈래를 여기서 확인하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루이 9세의 묘. 그의 심장을 담은 항아리가 여기에 안치되어 있다.


이 거대한 중세 성당은 외관은 수수한 고딕 건물처럼 보인다. 몬레알레는 고즈넉한 시골 마을 분위기를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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