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선물처럼 이것저것 다양한 재료를 넣어 쓴 잡썰
"저기요!"
핸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지하철에서 내리려던 나를 한 아저씨가 불렀다.
저런, 앉아있던 자리에 회사에서 받은 추석선물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가볍게 감사표시를 한 후, 선물세트를 손에 들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지하철에서 내렸다.
그 순간까지만 해도 그는 몰랐을 것이다.
내게 베푼 친절이 어떤 결과가 되어 돌아올지를.
집에 와서 들뜬 마음으로 꾸러미를 열었다.
스팸은 엄마아빠 사무실에 쟁여 놓고, 참치캔은 하나만 챙겨놨다가 마요네즈 뿌려 먹어야지. 참기름은...
"어?"
박스를 오픈한 순간, 나는 몹시 당황했다.
안에는 각종 식료품 대신 자동권총 한 자루, 탄창 여섯 개, 수류탄 두 발, 그리고 정체불명의 단말기가 들어 있었다.
무슨 상황인가 싶어 내용물을 눈으로 스캔하던 나의 눈에 익숙한 봉투가 눈에 띄었다.
'이거, 월급 명세서 봉투잖아.'
"친애하는 사원들에게.
나는 00화학의 대표이사 000라네.
지금까지 자네들은 이 회사를 그저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회사 정도로 여기며 다녔겠지.
하지만 자네들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사실이 하나 있다네.
바로..."
'약속의 네버랜드'
이 회사는 사실 지하조직 산하기관으로, 조직의 활동에 필요한 각종 무기를 제작하는 회사였다.
화학물질을 만든다는 것은 사실 이 조직의 정치를 숨기기 위한 위장사업일 뿐이었다.
사실 공장의 지하에서는 거대한 무기공장이 돌아가고 있었고, 그곳의 직원들은 비밀통로를 통해 출퇴근하고 있었다.
이 조직이 진행중인 프로젝트의 이름이 바로 '약속의 네버랜드'라고 했다.
"정해진 시각까지 집합장소에 모이지 않은 사원은 제거될 걸세."
편지의 마지막 문구였다.
'...'
이거 불법무기 자진신고를 해야 하나,
국정원에 신고해야 하나,
아니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나?
펑!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강한 진동이 온몸을 때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옆동 아파트 건물의 일부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뭐 하나?"
선물세트에 들어있던 단말기에서 지직거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 상무님?"
조회 때마다 불량률과 거래처 컴플레인을 가지고 나무라던 나이 지긋한 목소리.
"그대로 있으면 위험하네. 어서 무기를 챙겨 집합장소로 이동하게."
와장창, 상무님이 말을 끝마치기가 무섭게 방 창문이 깨졌다. 귓전을 만져 보니 피가 묻어나왔다.
누군가 내 방을 향해 총을 쏜 것이다.
서둘러 추석선물, 아니, 무장을 챙겨 안방으로 숨으려 했다.
"앗!"
안방에는 시커먼 복장을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나를 발견하자 지체 없이 총구를 겨누었다.
탕 탕 탕
순간, 살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이 머릿속을 강렬하게 채웠다.
나가야 해, 나가야 해.
서둘러 도어록을 열고 문 밖으로 향했다.
뚜걱 뚜걱, 나를 쫓는 남자의 군홧발 소리가 들려왔다.
수류탄 하나를 까서 집 안으로 던져넣은 후 다시 문을 닫았다.
엄청난 폭발음.
그리고 고통에 찬 괴성.
문을 열면 우리집은 폐허가 되어 있고, 남자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겠지.
더 이상 상상하고 싶지 않았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아포칼립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간단명료한 단어였다.
아까 그 남자와 같은 검은 복장의 사람들이 보이는 대로 사람들을 해치고 있었다.
곳곳에서 폭발음, 콘크리트 부서지는 소리, 비명 소리가 들려 왔다.
하늘은 시커먼 연기로 뒤덮혀 있었다.
저 사람들은 누굴까.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일까.
그리고 사장이 말한 '약속의 네버랜드'란 도대체 뭘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아파트 단지 한복판을 걷고 있었다.
주차장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주차되어 있던 SUV 차량 한 대가 폭발한 것이다.
"으악!"
머리에 엄청난 충격을 느끼며, 나는 바닥에 엎어졌다.
땡그랑, 머리를 치고 날아간 자동차 부품이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머리를 만져 보지 않아도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 씨..."
고통에 한발자국도 걷지 못하고 있던 찰나, 뚜걱 뚜걱, 군화소리가 서서히 가까워졌다.
검은 복장의 남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