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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Jul 11. 2023

비 오는 날, 라테 한 잔

-99년 이대 스타벅스 1호점에 대한 단상

나는 커피를 참 좋아한다. 

눈 뜨면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시작해서 3~4잔을 기본으로 마신다. 

집에서는 밀리타 카페오 머신으로 선물 받거나 자주 가는 커피전문점에서 사 온 원두를 바꿔가며 즐기고, 네스프레소와 돌체구스토 머신으로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마시고 있다. 

집 밖으로 나가면 시나몬가루를 뺀 카푸치노, 플랫화이트를 즐기는 편이다.

내 취향대로 주문할 수 있는 다양한 커피전문점들이 있어서 너무 행복한 요즘이다.


내가 이렇게 커피를 즐기기 시작한 게 언제부턴가 했더니, 정확하게 99년부터였다.

사실 경남 마산에서 나고 자란 내가 가장 처음 쉽게 접한 건, 자판기 커피였다.

산복도로에 위치한 내가 다닌 여고는 매점이 유명했다. 

당시에는 커피 자판기가 학교에 설치돼 있었는데, 밀크커피와 율무차를 뽑아 1:1로 섞어 마시면 그 달달한 맛이 하루를 버티는 힘이 되었다. 칼로리 때문이었나?!

그리고 커피를 좋아하는 이모 덕분에 비알레띠 모카포트로 내린 커피나 사이폰 커피라는 걸 마셔는 봤지만 자주 마시거나 즐기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핸드폰이 없던 시절, 삐삐를 통해 연락을 하던 시절에는 카페에 들어가 테이블마다 하나씩 있던 전화기를 앞에 붙어 앉아 있을 때가 있었다. 그때 친구들은 아이스크림에 롤과자가 올라가 있던 파르페를 많이 먹었고, 나는 주로 카페라테를 시켰던 것 같은데, 그냥 우유에 인스턴트커피를 넣어 만든 그런 맛이었다. 


이런 내가 98년 11월, 3학년 기말고사를 끝내고 미국 시애틀로 어학연수를 갔다.

엄마와 떨어진 건 수학여행 밖에 없던 내가 장장 1년 3개월이라는 기간을 미국에서 지낼 생각을 어떻게 했는지..

아무튼.. 처음 시애틀 타코마 국제공항에 내린 날은 눈이 엄청 내렸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 살면서 거의 눈이 쌓이는 걸 보지 못했던 나는 눈을 밀어내 담처럼 쌓인 도로를 달리는 것부터가 새로운 경험이었다. 뒤에 알고 보니 시애틀에서도 이례적인 눈이었다. 해양성기후인 시애틀은 따뜻해서 겨울에 비가 많이 내린다.

이모 친구 분의 아파트에 잠시 머무르며 시차적응을 하고 

짐을 옮겼던 Seattle University 기숙사에서 진짜 새로운 세상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99년에 내가 만나 시애틀은 말 그대로 커피의 도시였다. 

길을 걸으면 거짓말을 보태지 않고 5걸음만 걸으면 커피가게를 만날 수 있었다. 

스타벅스 1호점의 고장답게 스타벅스가 많은 것은 물론이고, 시애틀즈베스트, 할리스 등 대기업 커피숍은 당연하고, 개성으로 똘똘 뭉친 작지만 경쟁력 있는 커피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첫 경험이라고 하면 우습지만, 

유니온 호수 주변에 있던 스타벅스에서 

아는 오빠가 시켜준 에스프레소프라푸치노, 당시에는 이름도 몰랐던, 이 커피에서 쉐이크와는 다른 특별한 맛을 느꼈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처음 나 홀로 방문한 스타벅스에서 주문했던 메뉴는 카페라테...

사이즈..'숏, 톨, 그란데'도 공부하고, anything else? 에 대한 답도 준비했다. ㅋㅋ


- 참고로 라테는..

이때는 검색창이 없던 때다.. 네이버, 야후는 컴퓨터 안에 들어가 있긴 했겠구나.. 이때 이동전화는 벽돌폰일 때다. 나는 미국에서 삐삐도 없었다. 한국 집과 통화할 때 쓰는 유선전화기 한 대가 통신기기의 전부였던 시절이다. 


그런데 실제 주문에서 난관에 부딪쳤다. 

주문이 끝나자 종업원이 종이컵에 펜을 데고 나를 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일이지.. 싶었는데, 이름을 물어봤다. 

순간 당황해서 “캉! K. A. N. G.” 했더니 “켕” 하며 웃는다. 

살짝 기분이 나빠졌지만 진짜 내 이름을 말하면 쓸 줄도 모를 테니 5천 년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온 내가 참는다.. 했다. 

그렇게 어렵게, 힘들게 주문한 내 첫 스타벅스 라테는 참 고소하고 맛있었다. 

커피숍의 분위기도 너무 좋았다. 그렇게 나는 스벅 카푸치노에 저며 들었다.

커피맛이 뭔지도 모르고 그 분위기에 젖어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얼마 후, 같은 어학원에 다니는 서울에 사는 오빠가 

스타벅스 1호점이 이대 앞에 생겼다고 했다.

우리나라에 처음 스타벅스가 생긴 건 1999년, 이대점이 1호점이니까

내가 시애틀에 갔을 때는 우리나라에서 스타벅스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했을 때였다. 

사실 이게 한국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신경도 안 쓰고 커피를 마시러 갔는데..

뭐야, 서울사람들도 나처럼 스타벅스는 처음이었던 거야.. 했던 기억^^

지금은 특별할 것 없는 이 스타벅스 라테 한 잔이 

99년에는 아주 색다른 문화체험이었다는 것,

라테(나때)는 그랬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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