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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로부터의 도피

by 눈물과 미소



나는 우울하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살아있고 싶어서 여러 시도를 한다. 다음은 우울이 스며드는 과정과 나의 분투기이다.


동영상 강의를 한편 더 듣고 싶지도 않고, 책을 펴고 싶지도, 피아노 연습을 하거나 글을 읽고 싶지도 않은 순간에는 우울해진다. 우울해서 하기 싫어지는 것인지, 하고 싶은 일이 없어서 우울해지는 것인지 선후 관계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이 수렁으로 빠져들게 된다는 사실을 나는 익히 알고 있다. 따라서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글을 쓴다. 나의 생각을 풀어놓을 수도 있고, 타인의 글을 베껴쓰기 할 수도 있다. 최근에는 시를 필사하거나 영화 <헤어질 결심> 대본을 필사하고 있다.


때로는 장소를 바꾼다. 무력감이 더 도지기 전에 속히 옷을 갈아입고 짐을 싸 카페로 간다. 사람들의 소리와 음악 소리에 묻혀 책을 읽는다. 집에서는 펴고 싶지 않았던 책이 읽힌다. 우울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어지는 듯하다. 6000원의 행복이다.


어떤 때에는 우울해지면 먹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대체로 안 좋은 징조이다. (과하게) 먹었다는 사실이 안겨다 주는 패배감이 처음의 우울감을 더욱 압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에는 무언가를 먹고 싶어질 때 녹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몇 번은 참지 못하고 아몬드나 시리얼을 씹어먹기도 한다. 씹어 삼키는 입속의 쾌락을 어찌 이긴단 말인가.


최근에는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걷뛰를 시작했다. 나의 우울감은 상당 부분 몸무게와 관련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근육통과 날씨로 인해 지속하지는 못하고 있다.


오늘은 아이의 수학 문제를 놓고 씨름하느라 저녁 시간에 우울할 틈이 없었다. 직각이등변삼각형, 수선의 발, 보조선 등 기억 저 너머로 흘러가버린 용어와 공식들을 끄집어내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울로부터의 도피를 통해 오늘도,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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