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igraphy Exhibition-3 <confident>
고등학교 야간 자율 학습시간이다.
그때는 낮이고 밤이고, 그저 공부만 하면 장땡이던 시절이었다.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무지막지한 세월!
그저 견디어낸 게 용하다.
칭찬해.
그 시간이 오버랩된다.
서예 시간인데, 야자 시간이 떠오르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다냐?
붓을 들고 누르는 힘이
화선지 뒷면을 뚫을 듯이.
눈에서는 레이저가 나오고,
손가락에는 괭이가 생기고,
팔목에는 쥐가 나고,
엉덩이에는 진물이 나고,
마음에는 두드러기마저 난다.
할 수 있다.
할 수 없다.
할 수 있을까?
해낼 수 있겠지.
해낼 수는 있을 거야!
해내기는 해야 하는데.
해내기만 하면 되는데.
이제는 모든 걸 내려놓고,
그냥 그저 할 뿐이다.
그저 담담하고 묵묵하게.
하루에도 몇 백번씩 마음으로다가
널을 뛰고, 덤으로 시소도 타는 행복을 누려본다.
마음마저 요동친다.
이번엔 에버랜드 T-Express다.
그다음엔 gyro-drop이다.
그리고, 마지막엔 번지 점프다.
천국과 지옥을 순식간에
번쩍, 번개처럼 오간다.
한 장!
한 꾸깃.
또 한 장!
또 꾸깃.
다시 한 장!
다시 꾸깃.
마지막으로 한 장!
여지없이 매몰차게 또 꾸깃.
점입가경!
내 마음엔 뜨거운 온도로 말끔히 다려주는
다리미가 필요해요.
누가 좀 당근으로 구매해줘 봐요!
기다릴게요. 손꼽아
하나에 이어서
둘, 셋, 넷, 다섯. 무한 루프 가동 중.
뫼비우스의 띠!
그 한가운데 어딘가를
정처 없이
그러나, 다행히도
궤도는 이탈하지 않으면서
빙빙 돌고 돈다. 맴맴.
현기증을 느끼자마자
띠에서 내려오기로 작정한다.
잠시 동안의 해방을 느끼며
용기를 내 심호흡도 한 번 내쉬고,
다시 무한궤도 열차 탑승!
하나, 둘, 셋, 넷, 무한 루프 연속 가동 중.
열일한다. 열일!
3일 남았다.
지칠 대로 지치고,
퍼질 대로 퍼지고,
노곤해져 나가떨어지게 되어
붓 들 힘마저 쇠진되자,
할 수 없이
이제 마지막 보루였던 피난처도 사라졌으니,
그냥 사부님께 보여드릴 수밖에 없다.
사부님은 "잘 썼네요" 라고 냉담한 듯하나, 무심하게 으레껏 말씀해 주신다.
반성의 의미로
다음 날
몇 장 더 써서 보여드린다.
찰 한(寒) 글자의 가로 획이 조금 이상하다고 다시 써 보라고 하명하신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역시 어제는 예의상 말씀하신 거였어.
그다음 날!
온 정성을 다해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내
서너 장을 더 써서 카톡으로 날려드린다.
더 이상은 물러설 곳이 없다.
더 쓸 에너지도 없다.
이제 붓마저 들 수도 없을 지경이다.
지친다.
힘들다.
맥도 없다.
천만다행으로다가
'그만하면 됐다'라고 반 승낙이 떨어졌다.
허나, 아닐 것이다.
스승님도 이제는 포기하신 듯하다.
글씨의 완성도를 보시기보다는 글씨를 쓰는 동안 기울였던 작지만 소중했던 노력이 가상하다고 너그러이 판단해 주신 것이다.
아무튼, 그 틈을 타 냉큼
"그럼, 내일 지금까지 여태껏 쓴 것을 가지고, 갤러리로 찾아뵙겠습니다."라고 대외적으로 삼일운동 선언문을 선포한다는 듯이 대외적으로 엄숙히 천명하고서 재빨리 폰을 내려놓는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도록.
롱펠로우의 화살을 떠난 살같이 말이다.
딸칵!
부~릉!
부~웅!
끼~익!
딩~동!
삐리릭!
안녕하세요?
들어오세요!
선생님과의 뻘쭘스러운 조우!
작품이라고 손에 들고 보니 더 멋쩍었다.
선생님께서는 나 보고 하나 골라보라 하신다.
당신은 '잘 모르겠다'라고 하시면서.
말도 안 돼! 모르시다니.
내 속을 훤히 꿰뚫고 계시면서 은근 나의 심미안도 이번 기회에 감식/ 감찰/ 감독해 보시려는 의도임이
물속 같이 훤하다.
저도 그럼, 독백인 듯 독백 아닌 방백으로
'속 보이십니다요. 스승님!'
좀 더 잘 된 것을 고를 수 있도록 한 번에 두 장씩 갤러리 마루 한가운데 내려놓자, 스승님께서는 매의 눈으로 찬찬히 대비해 본다. 오른쪽 탈락! 바로 내리고, 다시 종이를 올리자 또 오른쪽 탈락! 이것도 또 무한 루프를 돌고야 만다. 괴롭다. 증말!
점점 속도가 난다. 이제는 한가로이 여유를 즐기던 유람선에서 내려 바꿔 타고 보니 바로 쾌속정이다. 오른쪽 화선지 내려! 왼쪽 화선지 내려! 깃발 게임인가 하는 착각마저 든다. 드디어 목적지다. 거의 다 왔다. 눈앞, 바로 목전이다.
고르고 골라, 고르곤졸라다.
결론은 버킹검!
탕, 탕, 탕!
더 없습니까?
그러면, 낙찰!
드뎌 난산에 종지부를 찍게 되는 순간이다.
지난한 산고 끝에 떡두꺼비 옥동자(?)의 탄생!
Congratulations!
우여곡절 끝에 출품작이 선정되었다.
눈물 반, 콧물 반!
흥분 반 스푼, 감격 한 스푼
그리고 나머지 벅참 반 꼬집!
이로써 뿌듯한 요리 한 그릇 뚝딱. 완성!
이럴 때 인기리에 연재된 바둑 만화이자 TV 프로그램이었던 미생에서는 완생이라고 한다.
장그래 왈,
"우리는 모두 미생입니다.
완생을 향해 가는 중이죠."
저도 이제 완벽을 추구하려고 노력하고 애쓰기보다 글을 써가는 과정 속에서 감정을 골라내 나를 보다 깊이 바라보고 싶다. 나에 대해 조금 더 알아가고 성찰하며, 한 뼘씩이라도 나날이 성장해 가는 나를 만나고 프다.
독자 여러분의 사랑도 고프다.
드불어 칭찬도 고프니까.
다들 아시죠. 응원! 후원! 흐흐흐.
하이얀 화선지와 새하얗게 지새던 밤이 얼마이던가? Knock down! 집요하게도 끈덕지게 명치끝을 파고드는 카운터 펀치로 인해 그야말로 녹초다. 어느새 감정의 응어리마저 스르르 실밥 풀리듯 풀려나간다. 그 사이에 잔잔한 희열도 안으로부터 피어오른다. 이게 러닝 하이에 견줄 수 있는 서예 하이인 것인가? 생애 두 번 다시 느낄 수 없을 것만 같은 건 왜지? 영영 맛보기 힘들 것만 같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 4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