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igraphy Exhibition-4 <satisfied>
고르곤 졸라서 겨우 고른 작품을 찬찬히 바라보니, 무언가 왠지 모르게 허전한 느낌이 감돈다.
바로 그 텅 빈 부분과 같은 곳을 꽉 차게 채워주는 게 있다. 두인이다. 그 두인을 찍자마자 두인을 찍기 전과 후가 너무나 판이하다. 꽉 찬 느낌은 기분 탓일까? 두인 탓일까? 무언가가 물밀듯 차오르며 작품까지 풍성해지는 기분이다.
만끽해 본다.
이어서 낙관 차례이다.
일반 인주와는 확연히 다르게 인주가 아주 찰지다. 도장을 집고서 몇 번을 두드려야만 인주의 빨간색이 겨우 도장에 묻어난다. 사방팔방을 차례대로 누르면서 사면이 고루 찍히도록 도장을 꾸욱 눌러준다. 이윽고, 선생님이 나보고 기념이니 낙관을 직접 찍어보라고 하신다. 도장을 건네받고 꾹 꾹 힘을 주어, 위 아래 좌 우를 번갈아가며 눌러본다. 내 눈동자 속에서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愚松. 이건 양각이다.
그리고, 崔ㅇㅇ印. 이번엔 음각이다.
낙관에 양각과 음각을 번갈아 사용하는 이유를 한 번 헤아려 보셨는가?
예전부터 선조들은 상대방을 부를 때 이름보다 호를 즐겨 불렀는데, 이름을 부르기보다 상대를 존중하는 의미로써 호를 사용해 온 것이다. 낙관에서도 그런 이유로 음각보다 양각을 사용해 호가 더 두드러져 보이게 한다는 사부님 설명이다. 당연히 이름은 음각이겠지. 자신을 뒤로 감추고 상대보다 낮춘다는 의미로다가. 선조들은 낙관 하나에도 의미와 철학을 담았구나.
마지막으로 호와 이름을 낙관으로 찍고서, 작품을 그윽이 바라보니 내 작품이 세, 네 배는 더 멋져 보인다.
자기 새끼가 더 예쁜 것은 동과 서, 고와 금을 막론하고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살짝이지만 깨물어주고 싶다. 아아~앙!
사부님의 감식안에 포착된 작품을 당신께서 손수 접어 소포 봉투에 고이 집어넣는다.
어디로 가는 걸까?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까?
자부심을 동봉하고 오겠지.
작품 제작소로 가는 것이다.
딸내미 시집보내는 심정이 이런 걸까?
보내자마자 기다려지는 심정이라니.
더 잘돼서 돌아와야 할 텐데.
학창 시절에 떨면서 예방주사를 맞았듯이 예행연습이라도 치르는 것만 같아 기분마저 묘하다.
만감이 크로스!
먼저 회초리를 잔뜩 얻어맞고 정신마저 혼곤해진 상황에 연이어 다음 타자분으로, 산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여성 원우분이 갤러리에 종달새처럼 날아 들어온다.
땀과 심혈을 담뿍 담아낸 자기 작품을 가지고서 설레는 마음을 가슴에 안고 사뿐히 들어온다.
작품을 펼쳐 놓고서는 연신 작품이 볼품 없다고 겸양을 드러낸다.
(겸양인가? 수줍음인가? 여자니까, 봐 달라는 건가! 설마 그건 아니겠지. 산사나이가)
그래도 여지없이 조금 전의 나와 똑같은 과정을 순서대로 차례차례 고스란히 똑같이 전철을 따라 밟아야만 한다.
(정말 꼬숩다.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지 않는가?)
독수리 선생님의 물샐 틈없는 감식안을 벗어나지 못하고, 바로바로 탈락되는 작품들이 희생양으로 줄지어 낚아채어져 가는 참혹한 광경을 그저 어미 제비로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어야만 하는, 신산한 산고를 이미 한바탕 단단히 치른 어미 제비로서는 연신 발을 동동거리기만 할 뿐, 어쩔 줄을 몰라 그 자리에 지하여장군 장승처럼 굳어져만 가고 있다.
어느 누가 그러지 않겠는가?
어떻게 첫 술에 배부르겠는가 말이다.
때로는 보조자로서 선작을 돕기도 하고,
때로는 작품 선배로서 좀 아는 체도 하면서, 나름 스승님을 보좌하는 경지에까지 다가가 본다.
드디어, 마무리 작업의 일환으로 탯줄을 끊어내는 심정으로 낙관까지 내리 찍는다.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우리 모두가 함박 웃음이다.
흡족하다 못해 만족한다.
만족하다 못해 충족된다.
충족에서 우러나오는 충일함으로까지.
사부님께 정중히 감사 인사를 드리고,
그 어려운 수능 시험(공교롭게도 오늘이 수능일이다)을 가까스로 끝마치고 시험장에서 후다닥 빠져나오듯,
차량 두 대가 갤러리에서 서둘러 꽁지를 내뺀다.
가까운 삼거리에서 두 대가 나뉜다.
젓가락 쪼개지듯이. 각자 갈 길로.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대상 2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