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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비키, 은퇴] 書藝-8

<nervous> Calligraphy Exhibition-1

by w t skywalker

봄도 지나 여름도 훌쩍 건너뛰고 어느새 단풍이 곱게 산천을 물들이고, 우리들마저 그 빛에 더욱 곱디곱게 물들어가는 가을 가을 찐~ 가을이다.


계절이 뒤바뀌고 더위도 가시면서 학업이 알찬 열매를 맺어갈 즈음, 우리 평생대학원 서예반에서도 가을 이벤트가 단지 마음만 분주하게 준비되고 있는 중이다.




서예 전시전!


서예전, 그간 귀로 듣기만 했지 이렇게 지척에서 소리 소문 없이 차분하게 준비되어 가는 과정을 직접 보면서 경험하게 되다니요. 무지 황감할 따름입니다.

서예반의 붓 다루는 솜씨는 그 인적 구성의 스펙트럼이 다양한 만큼이나 각자가 다다른 경지에서도 천양지차를 이루고 있다.

최고 고참에서부터 최연소 신참에 이르기까지 게다가 초절정 기교에서부터 초보자의 앳됨과 신선함 그리고 어색함까지의 그 모든 것을 품고 아우르며 또한 다독여주기까지 한다.




서예반의 수준은 편의상 고수(expert), 중수(intermediate), 하수(beginner) 그룹으로 3그룹으로 대별되며, 초보인 듯 초보 아닌 내 눈에는 그렇게만 보인다.


고수는 고수 나름대로 계속적으로 더 정진해야 할 목표가 뚜렷하고, 타 그룹보다 상대적으로 더 여유롭고 전진해 나가야 할 길 또한 누구보다 선명하기에 홀로 서기에도 유리하며, 무엇보다 스스로 내면에 침잠하면서도 고요함마저 즐길 줄 아는 경지에 이른 대감집 선비와도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서예 수업 시간에도 삼매경뿐만 아니라, 정중동 속의 컬러풀한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여실히 보여준다.


한편, 항상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고, 그 어떤 그룹보다도 시끌벅적하면서 생동감과 에너지가 넘치는 그룹은 다름 아닌 중수 그룹이다.

중수 그룹은 특성상 태생적으로 그렇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되어 깝죽거릴 수도 있고, 나름 일천하지만 실력에 기반한 훈수도 제법 둘 수 있는 수준이며, 가끔 가다가는 째(?)마저도 낼 수 있는 잠재력이 무지하게 엄청난 그룹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서, 중수는 중수 그룹 나름대로 서로 간의 약점을 피드백해 주는 선에서 적당히 경계를 지키기도 하고 간혹 넘나들기도 하면서 서예 수업시간을 가장 멋지게 게다가 최고로 맘껏 자유롭게 즐기고 있다고 자부한다.


하수는 언제나 그렇듯이 하수이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다 신기하기만 하다. 다만, 그들은 수업시간에 절대로 떠들지도 못하고, 서예반 교실 한편에 그들만의 보금자리에 둥지를 틀고서 미운 오리 새끼들 마냥 겁먹은 듯이 날개를 잔뜩 움츠리고 있다. 마치 시베리아 북풍이 불어오는 거친 광야와도 같은 냉랭한 교실 한 켠에서 서로의 등을 맞대고서, 어떠한 일이 있어도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굳은 각오로써 상호 간의 등에 의해서 살짝이나마 데워진 체온으로 간신히 온기를 느끼고 있다. 깎아지른 벼랑 끝에서 오로지 밧줄에만 생명을 의지하고 있는 것처럼 스승님의 따스한 눈길에 의지하여 가냘프고도 연약한 목숨을 간신히 연명하고 있다.

때로는 하수들도 숨은 내쉬어야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서로 간에 소곤소곤하지만, 조용히 성사되는 은밀한 대화를 통해서만 내밀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신비로운 특성마저 드러내 보인다.




이 평화롭디 평화로운 서예반에서도 먹이사슬상 상위 포식자 그룹들과는 별개로 동떨어져 있으면서도 어디에서나 반드시 존재하는 괴생명체(?)가 똬리를 틀고, 자신들만의 기세와 텃세를 부리면서 마치 자기 자리를 내놓으라고 호통을 치는 듯 그 모양새가 화선지에 찍혀버린 낙관처럼 선명하다.

이 생명체는 항상 다른 이들의 두려움을 조금씩 갉아먹으면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비록 본의는 아니지만, 간혹 가다 다른 그룹에서 실수로 그 먹잇감을 제공해 주게 되어 그 괴물은 모처럼만에 자신들에게 던져진 호의(?)로서의 세렌디피티를 한껏 누리기도 한다.

이 먹이는 그 무엇보다도 가장 강력하고 무서운 파괴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 어떤 다른 그룹들 사이에서도 여간해서는 쉽사리 그 정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그 누가 보기에도 섬뜩한 자신의 회갈색 몸체를 최대한 낮은 자세로 수풀 사이에 숨기고 있으면서 독기를 잔뜩 품고 있다.

각각의 개별 그룹들은 그 뱀에게 최초의 사냥감이 되지 않기 위해 제 나름대로의 안간힘과 갖 애를 쓰면서 간신히 버텨내고 있다. 한 점 먹을 것 없는 광야에서 먹이가 되지 않고 온전히 살아남기 위해 최선의 방책으로써 집단적으로 행동(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똘똘 뭉쳐서)을 하고 있는데, 정글과 같은 생태계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고자 일관되게 단체 행동을 하는 것은 자연의 지혜이자 섭리이며, 이치일 뿐이다.




그렇다면, 브런치 작가인 저자는 과연 어느 그룹에 속할까? 다행히도 여러분이 행간을 읽었다면, 이미 눈치채셨을 것이다.

다름 아닌 바로~ 초보이지만 자칭 중수 그룹에 속한다. 물론, 스승님의 전폭적인 총애(나 혼자만의 착각인가?)를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면서 서예 수업 시간에 집시처럼 그 누구보다도 자유롭게 행동하며, 상대적으로 수다쟁이 역할을 도맡아 따따부따 말까지 많다. 주저리주저리, 구시렁구시렁 대면서 때로는 감초 역할도 충실히 해내고 있다고 자부한다. 나만의 오류에 빠진 건가? 갇힌 건가? 그런 저자와 나름 쌍벽을 이루는 분도 한 분 더 계신다. 위안이 된다. 나만 깝치는 건 아니니 말이다.




이런 아기자기하고 정이 넘치는 서예반에서 전시회를 기획하게 되면서, 이번 전시회에 참가할 선수를 모집한다는 것이다. 비교적 초보에 더 가까운 나는 자원하지 않았다. 아니, 자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전시회에 참가할 정도의 수준이 아님을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 '너 자신을 알라'라는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말처럼 말이다.




그다음 주 서예강좌 시간.

스승님께서 "왜 전시회에 참여하지 않나?"라고 하문하신다.

"제 수준에는 아직...... 어울리지가 않습니다." 하고 애써 속내를 감추고서 에둘러 답변한다.


한편으로는, 마음속에 '나도 한 번 참가해 볼까?' 하는 치기 어린 생각도 불끈 솟는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한 번 도전해 보는 게 어때요?"

"전시회를 하고 나면 서예 실력도 부쩍 좋아질 거예요"

스승님께서는 북돋아주려는 심정으로 제게 가볍게 시너를 뿌리는 듯하셨으나, 나에게는 펄떡이는 심장 그 어딘가에 냅다 휘발유를 잔뜩 들이부은 것과 같고, 동굴 속에서는 자그마치 1톤의 다이너마이트를 한꺼번에 터뜨린 것과도 같은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선사해 준 것과 다름없다.


신나 덕분인지, 아니면 휘발유 덕분인지는 몰라도 아드레날린인지 도파민인지도 모르는 그 무언가가 내 안에서 일시에 분출됨과 동시에 그저 흥분한 나머지 " 예, 그럼 저도 아직 거칠고 미숙하기만 하지만 한 번 참가해 보겠습니다."

드디어, 스승님의 마지막 물방울 하나로 쿨쿨 잠자고 있던 어제는 사화산 같기만 하던 휴화산은 모처럼만에 단 한 번의 어루만짐으로 램프에서 벗어난 지니처럼 결국 활화산이 되고야 말았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일파가 만파가 되어 엄청난 파도와 파문을 일으키게 된다는 실로 놀라운 영향력을.

이 치기 어린 답변의 대가가 얼마나 크고 감당하기 힘든 것인지를 두고두고 후회하면서, 자꾸만 되돌아보게 되고 곱씹게 되는 유치 찬란한 희대의 사건 현장이 되고야 만 것이다.


이대로 얼음 땡!(영구히 그대로 박제)

추후 사건 현장에 감식반이 도착한 이후, 다시 휴화산이 되도록 사건 현장에 대한 재구성이 절실하다.




괜찮아, 잘 될 거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전시회)가 있어.

괜찮아, 잘 될 거야~

우린 널 믿어 의심치 않아.(성공적인 작품 전시)


오늘 Super star 노랫말이 스트레스가 극심한 생초보자에게 힘을 내라는 듯이 응원가로 한편, 고통에 시달리며 불면으로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있는 '강릉의 잠 못 이루는 밤에' 영화의 남자 주인공에게는 자장가로 나직이 귓가를 서성인다.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해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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