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에 개혁 세력의 리더였던
이방원은 역성혁명을 일으키려 했다.
뜻을 함께할 사람을 모았고
사병도 훈련시켰다.
만일에 대비한 것이다.
그가 제일 공을 들인 사람은 다름 아닌
아버지 이성계와 친분이 두터운 정몽주였다.
그를 잡으면 혁명은 쉽게 이뤄질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려의 충신 정몽주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방원이 정몽주를 회유하기 위해
'하여가'라는 시를 써서 보냈다고 한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년까지 누리리라'
세상이 바뀌고 있으니 함께 뜻을 모아
역성 혁명을 하자는 뜻이었다.
이에 정몽주는 단호한 시로 답을 했다.
'단심가'로 알려진 시로 뜻을 알렸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다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정몽주의 단호함을 알아 챈 이방원은
선죽교에서 그를 살해한다.
목표를 위해서는
걸림돌은 그 누구도 용서할 수 없다는 단호함의 표출이다.
이런 서슬퍼런 행동을 보고
감히 누가 반대의 깃발을 들겠는가?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는
고학년이 되면 이 두 시를 줄줄이 외우게 했다.
그래서 인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지금와 돌이켜 보면
왜 그 어린 아이들에게 '하여가'와 '단심가'를
외우게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 때의 선생님들은 전부 정몽주의 편을 들었다.
충신이라고!
심지어 정몽주의 충성어린 단심이
한이 되어 아직도 선죽교에
그의 핏자국이 남아있다고 가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