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는 늘 푸르다.
아니 푸르게 보인다.
소나무가 푸르게 보이는 이유는 솔잎을 늘 바꾸기 때문이다.
변색을 하는 솔잎을 떨어뜨리고
그 자리에 새잎을 돋게 해서
사람들이 볼 때에는 항상 푸르게 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깍는 노력을 해서
늘 푸른 소나무가 되는 것이다.
늘 푸르게 보이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소나무를 지조의 상징으로 여겼다.
임금을 향한 충성심도 소나무로 표현했고
친구를 향한 변치 않은 우정도 소나무로 표현했다.
일제 강점기에 남산의 소나무를 죽이기 위해
아카시아 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조선의 임금과 관리는 물론 일반 양반까지도
남산을 올려다보면 늘푸른 소나무가 있으니
나라를 잃은 우국충정이 안으로 안으로 불타올랐던 것이다.
그래서 일제 관리들이 남산의 소나무를 죽이기 위해
아카시아 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명분은 나무를 심어 남산을 가꾼다고 했지만
속내에는 소나무를 죽이기 위한 계략이었다.
아카시아 나무는 지력을 홀로 다 빨아들인다.
아카시아 나무 근처에는 온전한 나무들이 없을 정도다.
그렇게 왕성하게
땅의 자양분을 빨아들이니까
함께 자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일제가 소나무를 죽이기 위한 술책으로
아카시아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버티고 버틴 소나무가 자랑스럽다.
애국가에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이라는 가사가 있듯
우리 조상들은 소나무를 신성시하기도 한 것 같다.
아카시아를 저주하는 것은 아니지만
척박한 땅에도 잘 자라기 때문에
전국 어디에나 피고 지는 것 같다.
다만 아카시아가 번성하는 곳에는
지력이 떨어져 다른 나무들이 살 수가 없기 때문에
관리가 필요하리라 보여진다.
소나무와 아카시아가 상극은 아니지만
역사적인 맥락을 보면
소나무는 우리나라의 상징이자
충성심을 불러 일으키는 소재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반면에 아카시아는 심은 의도가 좋지 않기 때문에
박대를 받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