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에 살 때 봄이면, 여의도 윤중로에 핀 흐트러진 벚꽃 길을 걸으며 참 예쁜 계절이라 생각했다.
서귀포에도 봄이 오면, 쑥과 냉이, 개나리가 피고,
흐트러진 벚꽃 나무 아래로 떨어지는 꽃잎을 맞으며 바다를 보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너무도 예쁜 벚꽃이 아쉬운 건, 아마도 개화시기가 짧아서가 아닐 듯싶다.
짧게는 일주일 길어야 열흘이면 가녀린 분홍잎은 모두 떨어지고 만다.
그렇게 짧은 벚꽃이 지고 나면, 서귀포 봄의 진짜 여왕인 귤꽃이 피기 시작한다.
흐트러지게 예쁘기만 한 벚꽃과 달리 귤꽃은 나무 가까이 가서 보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을 만큼
작은 흰색 잎이다. 하지만 도민들은 귤꽃이 피고 있음을 향기로 안다.
서귀포 남쪽 지역인 신효, 효돈, 보목, 남원, 표선 지역까지는
사람들이 사는 집을 빼고는 대부분이 귤밭인 곳이다.
이 광활한 땅에 심 궈진 귤나무에 꽃이 피는 5월이 되면, 서귀포 전 지역은 귤꽃 향에 가두어진다.
코를 가까이 들이밀어야만 맡을 수 있는 꽃향기나 향수와는 느낌이 너무도 다른,
귤꽃 향은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귤꽃 향기를 굳이 표현하자면, 아카시아 향과 유사하지만, 귤 맛과 같은 상큼함이 더 강하다.
이른 아침, 창문을 열면 신선한 공기와 함께 귤꽃 향이 온 방을 감싼다.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 향기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나의 어휘력이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그래서일까, 5월이면 길에서 만나는 서귀포 사람들의 표정들이 참 밝아 보인다.
아무리 우울한 사람도 이 천상의 향기를 하루종일 마시는데 기분이 좋아지지 않기 힘들 것이다.
천상의 향을 계속 맡아서일까, 점심때가 되어도 배가 고프질 않는다.
이 향을 코와 몸으로만 느끼는 것이 아쉽다.
입으로도 먹어서 맛을 느낄 수 있다면, 비싼 값을 지불해도 아깝지 않을 듯싶다.
육지에 사는 지인들에게 여름휴가가 아닌 5월에 귤꽃 향을 경험해 보러 내려오라고 권하고 싶지만,
아직은 초보도민인 나 혼자만 좀 더 이 행복감을 느끼고 싶은 욕심이 든다.
나는 오늘도 스쿠터를 타고 달리는 출근길에 온몸으로 귤꽃 향을 맡으며 행복한 샤워타임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