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로 가족 모두 이주한 지가 벌써 2년이 지나고 있다.
힘들 때도 있었지만, 서울에서 쫓기듯 바쁘게 살 때와 비교해 보면
제주에서의 생활은 단순하긴 해도 여유롭고 평화롭다.
70이 넘으신 엄마도 만족해하시고, 제주를 너무 좋아하는 동생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걸 들을 때면
왜 진작 내려오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든다.
가족들이 모두 행복해할 때면 어쩔 수 없이 생각나는 그분에 대한 미안함에 아직 마음이 아프지만,
이제는 그럴수록 그분의 몫까지 더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제주로 내려와서 두 번의 추석과 설을 지내면서 그분의 산소에 가지 못했다.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지만 비행기를 타고 차를 빌려서 산소에 한번 다녀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처음에 제주에 내려올 때 어떻게 될지 몰라서 조부모님과 아버지의 산소를 이장하지 못했다.
제주에 잘 적응해서 살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았고, 산소 이장까지 준비할 여유가 없었다.
2년을 살아보니 서울에 다시 올라가 살 자신이 없다고 해야 하나
물질적으론 덜 풍족해도 삶의 질이 풍요로워진 제주의 생활이 너무 좋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명절이나 그분의 기일이 다가오면 죄송스러운 마음에 가족들 모두 마음의 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제주에서 계속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굳힌 순간부터 나는 산소 이장을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고, 조부모님의 이장까지 하기에는
아직 집안 어르신들께도 말씀드리지 않은 일이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3년에 한 번씩 오는 윤달이 올해 3월 26일에서 4월 16일에 들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어른들 말씀이 산소 이장은 아무 때나 하면 안 되고 윤달이 낀 해에 옮겨야 탈이 없다고들 하셔서
그 기간 안에, 더욱이 아버지 기일인 4월 13일 전에 해드리고 싶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세 분의 묘를 바다를 건너 제주까지 모시고 오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 가족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집안 어르신들에게 이장 계획을 말씀드리고,
이장 준비를 도와줄 업체를 섭외하고, 공원묘지 담당자와도 스케줄을 맞추었다.
다행히도 어른들 모두 잘하는 일이라고, 힘들 텐데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들 하시며 대견하다고 격려 말씀을 해 주셨고, 지인의 소개로 이장업체 또한 어렵지 않게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그렇게 육지에서의 준비를 마치고서 제주의 좋은 묘지를 찾아보았다.
외롭지 않게 우리가 자주 가볼 수 있는 수목장에 모시기로 가족들과 뜻을 모았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끝내고 4월 6일 동생과 나는 첫 비행기를 타고 육지로 올라갔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긴 하루를 보내고, 동생과 나는 세분의 유골함을 모시고 한라산을 넘어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신 서귀포로 무사히 돌아왔다.
너무도 힘든 하루였지만 세 분을 나란히 거실에 모시고 누운 그날 밤이 너무 편안하고 좋았다.
서울에서 바쁘게 살다가 한 번씩 산소에 갈 때면,
언제나 슬프고 죄송스러운 마음에 가슴이 먹먹하기만 했었다.
우리가 사는 모습이 행복하지 않았고, 그분들께 항상 죄송한 마음만 들었었다.
하지만 지금 아버지는 한라산 아래 말들이 뛰어놀고 제주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나무 아래에 계신다.
앞으로는 더 이상 죄송하지 않게 그분들이 보시기에 흡족해 보이시도록 행복하게 살고 싶다.
한라산 아래 그분이 계시기에 우리 가족은 외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