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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작가 Oct 08. 2023

서귀포의 여름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대한민국 여름 관광 일번지 서귀포로!"


짧은 여름휴가기간 꿈같은 달콤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많은 이들이 찾는 제주도,

올 때마다 항상 짧은 시간이 아쉬웠던 제주에서 막상 살아보면 어떤 기분일까?     

7월에 들어서자, 확실히 도로에 늘어난 렌터카들로 평소와 달리 혼잡하다. 

맛집으로 소문난 집도 아닌데 식당들도 혼잡하고, 바닷가에는 사람들이 북적인다. 

매일 다니던 자구리 공원에 관광버스가 줄 세워져 있고, 

각지에서 내려온 관광객들이 저마다 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저곳이 사진을 찍을 정도로 좋은 장소는 아닌 것 같은데’ 혼잣말을 해보지만, 

2년 전 나도 처음 보았을 땐 사진을 찍었었던 것 같다.     


서귀포에서 맞은 첫 번째 여름엔 걷고, 수영하고, 자전거를 탔다. 

두 번째 여름엔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곤 일을 했다. 

세 번째 맞는 올여름엔 놀기와 일하기를 적절히 병행하고 있다. 

습하고 더운 서귀포의 여름날씨에 실외작업은 상상하는 것보다 많이 힘들다. 

평소 같으면 반나절이면 할 작업량도 한 나절 정도 해야 마칠 때도 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일이 힘들다기보다 뜨거운 날씨에 밖에 서 있는 거 자체가 힘들다. 

함께 일하는 사장님도 긴 공사보다는 짧게 끝낼 수 있는 일을 선택하고, 

되도록 이른 시간에 일을 마치기 위해 오전 6시부터 일을 시작한다. 

긴 공사일은 일정 조정을 해서 9월 이후로 미루고 있다. 

관광객들에겐 그림 같은 휴가지이지만, 

그곳에서 사는 이들에겐 삶의 현장이기에 뜨거운 여름이 달콤하지 만은 않다.      

짧고 굵게 오전일을 마치고 먹는 시원한 콩국수 한 그릇은 어떤 산해진미도 부럽지 않은 맛이다. 

땀에 젖은 작업복 바지를 시원한 반바지로 갈아입고, 스쿠터를 타고 달려가는 곳은 집 근처의 구두미 포구.

복잡한 서귀포 항과는 달리, 작은 구두미 포구엔 낚시용 고무보트 한 두척 만이 정박해 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사람들로 북적이는 해수욕장과는 다르게 

십여 명의 주민들이 더위를 식히며 물놀이를 하고 있다. 

땀에 절은 작업복 셔츠를 벗어던지고, 시원하게 곧바로 입수를 해본다. 

콩국수로는 아쉬운 뜨거운 몸을 구두미 바다에 던져 놓으면 순식간에 열기가 사라진다. 

중문관광단지의 5성급 호텔 수영장이 부럽지 않은 천연 바다 수영장에서 뜨거운 몸을 식혀준다.   

   

수영복을 갖춰 입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파라솔이나 탈의장, 샤워장 또한 없는 구두미 포구가 올여름엔 나의 오아시스가 되었다. 

넘실거리는 서귀포 바다에 몸을 맞기고, 서쪽 해안선으로 저물어 가는 태양을 보고 있으면, 진짜 살아있음을 몸으로 느낀다.

뜨거운 하루를 보내고, 뜨거운 태양이 지는 광경을 바닷속에서 바라보는 경험은 강렬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이곳도 소문이 나서 내년 여름엔 관광객들로 북적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또한 어떠랴.

서귀포엔 아직 숨겨진 계곡도 많고, 알려지지 않은 바닷가도 많을 텐데.

서귀포 노가다 꾼은 그렇게 뜨거운 서귀포의 여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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