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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작가 Oct 08. 2023

장마가 시작됐다.

섬에 살기 3년 차가 시작됐고, 3번째 여름을 맞고 있다. 

올해도 서귀포의 여름을 알리는 장마가 어김없이 찾아왔다. 

육지에서 식당을 하면서 맞는 장마는 눅눅하고, 우산을 써야 하는 불편함에 차가 많이 밀리는 기간. 

시원한 음식보다는 따뜻한 탕 종류가 많이 팔리는 일상으로 기억된다.     


서귀포의 장마는 사뭇 다르다. 습함의 정도와 강수량의 양이 엄청나게 많다.

또한 많은 도민들의 일상을 멈추게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서귀포 주민의 대다수는 농업이나 어업과 직. 간접적으로 연관된 직업군이 대부분인 지역이다.

귤 비수기 이기도 하고, 다른 밭작물을 재배하는 농민들도 장마가 시작되면, 일손을 내려놓고, 

한가로이 일상을 보내며 비가 그치기만 기다린다. 

어부들 또한 궂은 바다 날씨에 조업을 나가지 않고, 어망을 손질하며 휴식기를 갖는다. 

나와 같은 현장일을 하는 노가다 꾼들 역시 급한 실내 일을 제외하고는 원치 않는 긴 휴가를 갖곤 한다. 

시내를 제외하고는 가뜩이나 인적이 드문 서귀포는 그야말로 안개로 뒤덮인 멈춰진 시간의 나라가 된다. 

서울에서 장마철이면 출퇴근 시간 이후에도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로 답답했을 텐데, 

서귀포에는 차가 없이 한가롭다. 서귀포의 장마는 관광객들도 도민들도 모두 멈추게 한다.      


섬에서 맞는 첫 해의 긴 장마는 내게 우울함과 불안감을 주었다. 

끝도 없이 내리는 비와 일주일씩 볼 수 없는 햇살에 답답함과 우울한 기분. 

이렇게 길게 일을 못하면 수입이 크게 줄 거라는 불안함에 스트레스가 컸었다. 

하지만 세 번째 맞는 서귀포의 장마는 더 이상 우울하지 않다. 

과도한 햇살 아래 너무도 긴 시간 동안 육체노동을 한 내 몸에게 주는 휴식시간이 되고, 

읽고 싶었던 책을 읽을 수 있고, 보고 싶었던 영화나 드라마도 몰아 볼 수 있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늦은 시간까지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다. 

남들이 가질 수 있는 한 번의 여름휴가를 서귀포 노가다 꾼으로 살면서 

한번 더 가질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다.      


지금도 밖에는 짙은 안갯속에 비가 내리고 있지만, 나는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책도 읽고 글도 쓴다, 

많은 이들의 일상을 잠시 멈추게 하는 올해의 장마도 일주일 후 정도면 끝날 것이다. 

어느덧 섬의 불청객 장마 또한 순응하며 소중하게 여기는 나를 보며 한해 한해 섬사람이 되어가는 걸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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